[쿠키 사회] 팔순을 넘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어려운 형편인데도 생활비를 아껴 모은 거액을 장학기금과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건립 비용으로 선뜻 내놓았다.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 속리산 기슭에 사는 이옥선(83) 할머니는 7일 (재)보은군민장학회를 찾아 지난 20여년간 먹고 입을 것을 아껴 모은 돈 2000만원을 흔쾌히 기부했다. 기초생활수급금과 위안부 피해자에게 주는 생활안정지원금 등으로 생활하고 있는 할머니에게는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큰 돈이다.
이 할머니는 “당시 나라에 힘만 있었어도 내 인생이 이렇게 기구하진 않았을 것”이라며 “나 같은 불행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평생 모은 돈을 장학사업에 보태기로 마음 먹었다”고 말했다.
대구가 고향인 이 할머니는 열여섯 살이던 1942년 일본군에 의해 중국으로 끌려가 2년 넘게 위안부 생활을 했다.
그녀는 조국으로 돌아온 뒤 오갈 곳 없이 전국을 떠돌다가 속리산 기슭에 정착해 남의 집 살이와 음식점 허드렛일을 하며 생활했다. 마흔을 넘긴 나이에 가난한 홀아비를 만나 결혼했지만 20여년만에 사별하면서 다시 혼자가 됐다.
위안부 시절 만신창이가 된 몸 때문에 아이를 갖지 못하게 된 이 할머니는 허구한 날 앓아눕거나 고열에 시달리면서 약을 입에 달고 살았고 손가락이 비틀어지고 손톱이 빠지는 등의 후유증도 겪었다. 그녀는 몸과 마음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 집 앞에 태극기를 내걸어두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인 김복동(83) 할머니도 6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추진하고 있는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건립에 써달라며 1000만원을 내놓았다. 지난 4년여간 정부에서 받은 생활지원비 중 일부를 떼어 모은 돈이다.
김 할머니는 1992년 위안부 생존자로 정부에 신고한 뒤 세계인권대회 등에서 피해자 증언활동을 했으며 1999년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가 살고 있다.
정대협은 지난달 8일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 회복을 위한 박물관 착공식을 가졌다. 박물관 건립 기금은 소요비용(약 35억원)의 절반 정도가 모아진 상태다.
정대협 관계자는 “김 할머니가 더 많은 돈을 내지 못해 아쉬워했다”며 “할머니의 뜻이 헛되지 않게 기부금을 소중하게 쓰겠다”고 말했다. 보은=국민일보 쿠키뉴스 정재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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