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하지 않은 로맨틱무비 ‘미스 루시힐’

로맨틱하지 않은 로맨틱무비 ‘미스 루시힐’

기사승인 2009-04-09 17:54:01

[쿠키 문화] 실수로 속옷 안 입은 채 쫄티 차림으로 노조위원장과 미팅하기, 술 취해 눈밭에 넘어지기, 명품 구두 신고 출근하다 수십명 직원 앞에서 넘어질 뻔하기, 폭설에 갇힌 상태에서 빨간색 여성 속옷으로 구조 깃발 만들기.

이상은 영화 ‘미스 루시힐’(사진)의 주인공인 마이애미의 신상녀(새로 나온 명품을 재빠르게 구입하는 여성) 루시힐(르네 젤위거)의 특기다. 마이애미 대형 제과업체 본사에서 일하는 루시힐은 잘 나가는 직장 여성. 그는 공장 자동화와 구조조정을 지시하는 관리자로 미네소타 지사로 파견된다.

루시힐은 호수가 얼면 일과를 내팽개치고 얼음낚시를 하러 가는 공장 직원들에게 영 적응하지 못하고, 노조 위원장 테드(해리 코닉 주니어)와 사소한 말다툼을 벌이다 사이가 틀어진다.

그러나 직원들은 그를 외톨이로 놔두지 않는다. “크리스마스 특별 보너스”라고 한 손으로 돈을 건네는 차가운 얼음공주 루시힐에게 비서인 블랑쉐 건더슨은 자신이 직접 만든 크리스마스 선물을 건넨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사랑에 목숨 걸던 평범녀 르네 젤위거는 이번에 도도한 골드미스로 관객들에게 다가간다. 그러나 실수 연발 캐릭터는 그대로다. 남성 임원들 사이에서 언제나 똑 부러지고 당찬 루시힐이 시골 출신의 공장 직원들에게 매번 당하기 때문.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놓고, 작품성과 현실성이라는 냉혹한 잣대로 판단할 수는 없다. “결국 일보다 사랑을 택하는 나약한 여성상을 그린 영화”라고 비판하거나 “여자가 똑똑한 척 해 봤자 별 수 없다”는 인식을 유도한다는 평가는 작품성으로 승부 거는 영화에나 할 수 있다.

하지만 로맨틱 코미디가 그다지 로맨틱하거나 웃기지 않다면, 칙릿영화(젊은 여성들을 공략한 영화)가 여성들의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다면, 그거야말로 문제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가 관객에게 먹혔던 이유는 단순히 웃겨서만은 아니었다. “술병을 애인 삼아 여생을 보내다 독신자 아파트에서 죽으면 3주 뒤 애완견에게 3분의 1쯤 뜯어 먹힌 시체로 발견되겠지”라는 브리짓 존스의 엉뚱한 상상, 육중한 엉덩이를 들이미는 슬랩스틱 코미디 속에는 이 시대를 사는 평범한 여성들의 보편적인 정서와 고민이 녹아 있었다. MBC ‘내 이름은 김삼순’ KBS2 ‘올드미스 다이어리’ 같은 노처녀 드라마가 인기를 끈 것도 비슷한 이유다. 이제 르네 젤위거의 개인기만으로 흥행이 보장되진 않는다. 12세가. 국민일보 쿠키뉴스 박유리 기자
nopim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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