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과 불안 속 쌍용차…신음하는 평택

충격과 불안 속 쌍용차…신음하는 평택

기사승인 2009-04-16 21:00:00

[쿠키 경제]
16일 쌍용자동차 공장이 있는 경기도 평택은 침울했다. 공장 주변엔 쌍용차 노조와 시민단체들이 내건 플래카드가 어지럽게 바람에 날렸고, 삭발한 머리에 붉은 띠를 맨 노조간부들이 오갔다. 회사 본관은 비용절감을 위해 대부분의 형광등을 끈 탓에 어두웠다.

공장은 충격과 허탈감, 미래에 대한 불안이 가득했다. 쌍용차에서 시작된 위기의 기운은 이미 주변 상가는 물론 평택시 전체로 번져 있었다. 회사는 전체 직원의 37%인 2646명을 자르기에 앞서 이날부터 희망퇴직 접수에 들어갔다.

◇불안에 덮힌 쌍용차=평택공장 정문 앞은 플래카드 홍수였다. ‘쌍용차가 살아나야 우리 아들 대학 보낸다’(평택 여성단체협의회), ‘쌍용차 엔진소리 평택사회 밝아진다’(평택 주민자치위원회) 등 수십개의 응원 문구가 공장 벽면과 도로 양옆을 빼곡히 채웠다.



쌍용차는 지난해 12월 이후 월급을 제때 지급한 적이 없다. 지난달도 2월에 못받았던 월급 20%와 설 보너스를 합해 평소 절반 수준만 줬다. 버스정류장에 쌍용차 근무복을 입고 서 있던 최모(42)씨는 “쉬는 날이지만, 회사에 들렀다가 저녁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는 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무슨 일을 하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그는 “나 같은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정문 안쪽으로는 대형 천막 6개동이 쳐져있었다. 노조 집행부와 대의원들의 농성 장소다. 올 초만 해도 1개였지만, 최근 5개가 추가됐다고 한다. 노조는 전날 기자회견을 열고 “사측의 정리해고 방안을 온몸으로 거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관리직 희망퇴직 신청이 시작됐지만 겉보기엔 평온했다. 한 직원은 “예고됐던 일인데다 이미 일부 사원들은 직장을 옮겼다”며 “속으로는 어떨지 모르지만 다들 내색을 안하려 한다”고 전했다.

◇컨베이어벨트는 돌아가고=회사는 어수선했지만 본관 뒤편 건물의 공장은 가동 중이었다. 4라인의 컨베이어벨트가 체어맨과 로디우스를 얹고 천천히 움직였고, 직원들은 자기 앞에 놓인 차체에 유리창을 달거나 내부 부속품을 조립하는데 열중했다. 왼쪽 가슴에는 ‘정리해고 반대’가 적힌 리본을 달았다. 한쪽 구석에서는 흥겨운 랩 음악도 흘렀다.



조립4팀의 최노훈씨는 “마음은 아프지만 지금은 현장에서 일한다는 자체가 즐겁다”며 “상황이 안좋은데 제품 품질마저 떨어지면 정말 끝장이라는 생각에 평소보다 더 열심히 일한다”고 말했다. 다른 직원은 “모두가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고통 분담은 얼마든지 받아들이겠다”며 “평생을 바친 직장을 나가게되더라도 다른 곳에서 자리잡을 수 있도록 회사가 좀 더 노력해줬으면 한다”고 했다.

노조 집행부는 총파업도 불사하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현장의 표정은 복잡했다. ‘끝까지 싸워 정리해고만은 막아야 한다’는 쪽과 ‘지금 싸우면 공멸한다’는 쪽이 엇갈려 보였다. 그러나 다들 말을 아꼈다. 오후5시30분이 되자 하루 조업이 모두 끝났다. 쌍용차는 현재 야간작업없이 주간조만 운영하고 있다.

◇신음하는 평택=쌍용차는 평택 경제의 20%를 차지한다. 쌍용차와 협력업체 직원, 그 가족들 수가 평택 인구의 10%고 이들의 소비액은 연간 84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쌍용차의 위기는 지역 경제 전반의 위기인 셈이다.



쌍용차 공장 정문 주변 상가의 부동산중개 업소, 편의점 등은 ‘임대 문의’ 광고판을 내걸고 폐업 상태였다. 한 식당주인은 “점심 손님만 몇몇 받아서 월세 정도만 겨우 벌고 있다”며 “요즘 저녁 회식이나 술자리는 끊겼다”고 말했다.

공장에서 차로 5분정도 떨어진 S아파트 입구에는 ‘쌍용의 발전, 가정 경제 발전! 아빠 힘내세요’라는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남편이 쌍용차에 근무하는 박모(38)씨는 “초등학교 5학년인 딸아이가 학교에서 ‘너희 아빠네 회사 망할지도 모른다고 하더라’는 얘기를 듣고 와서는 우는데 가슴이 찢어졌다”며 “회사도 살고, 남편도 계속 일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라고 했다. 평택에서 가장 번화가로 꼽히는 평택역 주변 상가도 쌍용차발(發) 한파에 신음했다. 한 슈퍼마켓 주인은 “지금 지역경기가 말이 아니다”며 “옷가게, 미용실, 목욕탕 등 장사가 잘되는 곳이 없는데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평택=국민일보 쿠키뉴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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