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정치]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안(의원입법)의 자진 철회 건수가 급증하고 있다.
23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5월31일 18대 국회 개원 이래 의원들이 법안을 제출했다가 철회한 건수는 모두 402건이었다. 이 중 361건은 지난해 11월28일 한나라당이 양벌 규정(위법 행위자와 법인 또는 개인을 동시에 처벌하는 규정) 개정을 위해 지도부인 홍준표 주호영 임태희 의원 명의로 법안을 일괄 발의해 강행 처리하려다 한꺼번에 철회한 경우다.
이를 제외하더라도 18대 국회는 불과 1년 만에 41건의 의원 발의안이 철회됐다. 이는 16대 국회 4년간 철회된 건수(41건)와 같고 17대 전체(86건)의 절반에 가까운 수치다. 의원들이 법안 발의 실적에 급급해 부실하게 발의하거나 정부 부처나 업계의 '민원'을 받아 발의하는 선심성 입법 관행이 확산되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정부 및 업계 청부입법?=한나라당 김용태 의원은 지난 16일 동료 의원 11명의 서명을 받아 영세 자영업자의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를 골자로 한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안을 냈다가 나흘 후 철회하고 재발의했다. 앞선 법안에 포함된 '1만원 미만 카드 결제시 가맹점 수수료를 신용카드 회원이 부담하도록 함'이란 문구를 삭제하기 위해서였다. 1만원 미만 카드 결제가 전체의 23%를 넘는 상황에서 전국 소비자들의 항의가 빗발칠 것을 우려해서였다. 김 의원측은 "정부 및 업계와 협의 후 문안을 받아 발의했는데 독소조항이 들어 있어 즉시 철회했다. 어쨌든 제대로 검토하지 못한 것은 실수"라고 해명했다.
탐정법으로 불리는 민간조사업법의 경우 한나라당 이한성 성윤환 의원이 각각 법안을 제출했다가 스스로 철회했다. 민간조사업법은 사설탐정의 관리 감독권을 법무부에 위임하는 법안으로, 기존 비슷한 기능을 하는 경비업법과 충돌한다. 경비업법의 경우 사설 경비업체에 대한 관리를 경찰청에 맡기고 있어 법안으로 인한 정부 내 관할권 다툼이 심한 분야다.
◇무성의한 발의 남발=문장 한두개를 바꾸는 수정법률안이 대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오타가 발견되거나 명칭이 혼선을 줘 철회 후 재발의한 경우도 있다. 지난 1일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철회한 한나라당 박종희 의원의 경우는 법 27조 2항 2호를 개정하는데 '유·무형의 재산'으로 써야 할 것을 '유·형의 재산'으로 잘못 쓴 것으로 드러났다. 한나라당 김동성 의원은 산업기능요원 등이 불성실하게 근무해 현역병으로 재복무할 경우 일반인보다 2분의 1 더 복무하는 병역법 개정안을 지난해 11월 냈다가 5개월 만인 이달 중순 철회 후 재발의했다. 법무부가 이중처벌이란 위헌 소지 의견을 냈고, '산업기능요원'이란 명칭이 잘못돼 '보충역'으로 수정한 것이다.
18대 국회 첫 1년간 의원발의 법안 수는 3806건을 기록, 17대 4년간 전체의 절반을 넘을 정도로 입법 활동 자체는 활발하다. 하지만 '실적발의' '거품발의' 논란에 휩싸이지 않도록 보다 신중하고 치밀한 입법 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국회 내 최다선(7선)이자 꼼꼼한 법안 심사로 유명한 조순형 자유선진당 의원은 "법안 준비 단계부터 국회 입법조사처와 법제실의 도움을 받은 뒤 공청회와 토론회를 거치는 등 시간이 걸리더라도 원칙대로 하면 된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우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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