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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문화] 킥킥. 허참. 지난 27일 열린 홍상수 감독의 신작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언론 시사회는 김빠진 웃음으로 시작해, 역시 그것으로 끝났다. 실소(失笑)였다. 어처구니없고, 그래서 나도 모르게 나오는 실소. 길을 걷다가 재수 없이 돌에 걸린 발을 보거나, 하늘에서 떨어진 새똥을 맞고 순간 인상을 찡그리다가도 어이없어 나오는 웃음.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가 “너나 잘 하세요”를 외쳤듯, 홍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아는 만큼만 말해요”라고 역설한다. 그러나 ‘강원도의 힘’ ‘생활의 발견’ 등 전작에 담긴 독소나 조롱은 옅어졌다. 욕설도, 야한 장면도 거의 없다.
이번 영화는 홍 감독 특유의 유머로 위선과 가식을 지적하면서도, 그 시시껄렁함마저 인생의 한 부분임을 인정한다. 실소는 여기서 나온다. ‘아는 척, 있는 척, 잘난 척’ 하는 인물들을 통해, 그 ‘척’이 얼마나 쓸데없고 우스운지를 보여주면서도, 그것에 기대지 않고 사는 것도 쉽지 않음을 인정하는 듯하다. 그런 면에서 영화는 전작보다 관조적이다.
언론 시사회가 끝난 후 기자들의 첫 질문은 “감독님, 자전적인 영화인가요?”였다. 영화 속 예술영화 감독 구경남(김태우)은 2백만 관객이 드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싸게 제작한다든가, 구체적인 설정 없이 즉흥적으로 영화를 만드는 점에서도 구경남과 홍상수 감독이 묘하게 겹쳐진다. 구경남은 영화 심사를 위해 충청북도 제천시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후배를 만나 하룻밤을 보낸다. 후배는 천사 같은 부인을 만나 새 삶을 찾았다고 말한다. 12일 후 제주도에 영화 강의를 하러 간 그는 대선배인 화백 양천수를 만난다.
영화는 새 삶을 찾았다고 자신하는 사람들을 조명한다. 그들은 한결 같이 “진심과 거짓이 혼재되지 않은 천사 아내” “나를 속물이 되지 않게 하는 남자”라는 표현으로 새 파트너와의 삶이 속되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새 삶 역시, 젊은 아내를 두고 바람을 피우는 등의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자신에 대한 부정이거나 조롱과 맞닿아 있다.
영화의 또다른 재미는 김태우 고현정 엄지원 하정우 공형진 유준상 정유미 등이 열연하는 캐릭터다. 욕심과 가식, 자기 최면과 위안에 기대 살면서도 ‘사회 생활’이란 이름으로 얼추 서로 비슷하게 맞춰 사는 게 우리네 모습이다. 그러나 예의와 체면이라는 요소는 낮추는 대신 속물 근성을 높인 캐릭터는 일상적이면서도, 독특하다.
영화 속 구경남은 팬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감독님 영화를 통해서 인간심리의 이해 기준을 얻었습니다. 영화가 아니었다면 못 이해했을 그런 인간군상이 있었을 겁니다.”
거창하게 인간 심리의 이해 기준까지는 터득하지 못해도, 세상에는 여러 질의 인간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들 역시 최선을 다해 산다는 것 정도는 알게 해 주는 영화다. 칸 국제영화제 감독 주간 진출작. 18세가. 5월14일 개봉. 국민일보 쿠키뉴스 박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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