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자전거로 희망을 조립하는 사람들

폐자전거로 희망을 조립하는 사람들

기사승인 2009-05-22 22:35:01


[쿠키 사회] 22일 오후 4시 서울 용산 가족공원에서 열린 '희망을 싣고 달리는 자전거' 행사. 녹색 잔디 위로 반짝거리는 은빛 자전거 250대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자전거들은 용산구 내 저소득층 노인과 아이들에게 기증됐다. 번듯한 이 자전거들은 그러나 얼마 전까지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고철 덩어리'였다. 폐자전거는 용산구내 아파트 단지 등에 곳곳에 방치된 것들이었다. 천덕꾸러기 취급받던 폐자전거를 새 것처럼 만든 '미다스의 손'들은 노숙인 다시서기 상담보호센터의 '자전거재활용사업단' 회원들이다.

노숙인 출신인 이들은 폐자전거를 다시 조립하며 삶의 희망도 재조립하고 있다. 지금은 어엿한 자전거 전문가들지만 회원들에게는 남모를 아픔이 있다. 회원인 장찬우(가명·30)씨는 2002년 군에서 제대한 뒤 마트 주차, 카드 판매 등의 직업을 전전하며 방황했다. 한 직장에 오래 머물지 못했고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사채에도 손을 댔다. 200만원을 빌린 사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부모님에게 피해가 갈까봐 2005년 집을 나왔다. 장씨는 "친구 집이나 고시원을 전전하며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살다가 '에라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강우(가명·45)씨 역시 2008년 8월 이곳에 오기 전까지 1년여 동안 노숙 시절을 경험했다. 10년여 동안 카센터 일을 해오던 이씨는 손님들의 까다로운 비위를 맞추지 못해 2007년 일을 그만 뒀다. 이씨는 "나 자신에 대한 불만, 손님들에 대한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하루에 술을 3병씩 마셨다"고 했다. 센터의 방동환 사회복지사는 "회원들 중에는 남모를 사연이 없는 사람이 없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폐자전거 수리 사업은 이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줬다. 장씨는 "예전에 나는 남에게 피해를 주는 존재였지만 이제는 도움이 되는 존재"라며 "사람들과 함께 작업을 하니 '나'만 생각하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장씨는 월급을 모아 자리잡은 뒤 부모님께 다시 연락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이씨에게도 자전거 수리가 새로운 삶의 원동력이 됐다. 이씨는 "나 자신에 대한 원망이 여전했지만 자전거 수리를 하나씩 배워나가면서 이상하게 그런 게 잊혀졌다"고 말했다.

10명의 재활용 사업단이 폐자전거를 수집하고 분해해 새 자전거로 만드는 데는 꼬박 넉 달이 걸렸다.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자전거 페달과 체인을 붙잡고 살았다. 작업장이었던 서울 갈월동 다시 서기 센터 건물 지하 주차장이 늘어나는 자전거들로 비좁아지자 서울역 소화물 센터로 작업장을 옮겨 수리에 매달렸다. 완성된 자전거는 하나하나 시승해 핸들이 제대로 움직이는지, 브레이크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점검했다.

이씨는 "처음에 쌓여 있던 폐자전거를 보면서 '저걸 언제 다 새로 만드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내가 만든 자전거를 받고 기뻐할 아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흐뭇해졌다"고 말했다. 장씨는 "솔직히 좀 아깝다"며 농담을 건넸다.

다시 서기 센터의 이형운 팀장은 "2006년 이후 지금까지 2400여대를 기증해 왔다"며 "이제는 단순 기증이 아닌 수익을 내는 사회적 기업으로 키울 계획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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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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