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열기는 때이른 무더위도 삼켰다. 장의위원회가 공식 집계한 조문객은 28일 오후 5시까지 432만1306명이다. 종교기관, 대학교 등 집계되지 않는 분향소까지 합치면 실제 조문객은 500만명을 훌쩍 넘어설 것으로 추산했다.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서울 대한문 앞 시민분향소까지 수많은 국민들을 불러모은 '조문 신드롬'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전문가들은 국민들이 평소 권위를 부정하고 소탈했던 '서민 대통령'을 그리워하며, 그가 꿈꿨던 가치를 새삼 인정한 데 따른 현상으로 보고 있다. 조문객들이 가장 많이 한 말이 '미안하다'는 것에서 드러나 듯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몬 상황을 안타까워하는 마음도 깔려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경제난에 지친 서민들은 분향소를 찾아 눈물로 답답함을 호소하고 서로를 위로했다는 것이다.
◇"미안해서 왔어요"=국민장이 치러진 7일 동안 조문객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지역과 연령, 성별도 뛰어넘었다. 30도를 넘나드는 더위, 갑자기 쏟아진 장대비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수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분향소로 이끈 동력은 마음 밑바닥에 깔린 '미안함'이다. 노 전 대통령측 관계자는 "검찰 발표와 언론 보도만으로 노 전 대통령을 비판적으로 봤던 일,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생각이 잘못된 것 같다는 미안함이 섞여 있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신념과 품성을 끝까지 믿지 못한 채 막연히 비판한 것을 미안해 했다는 설명이다.
영결식을 지켜보기 위해 휴가를 내고 광화문 사거리에 나왔다는 회사원 허지영(28·여)씨는 "처음으로 투표해 뽑은 대통령이었는데 그를 끝까지 지지하지 못했다"면서 "힘들어하던 노 전 대통령의 마음을 몰라줬던 게 너무 후회돼 찾아왔다"며 울먹였다.
중앙대 사회학과 이병훈 교수는 "일국의 지도자였던 분이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것에 대해 국민들이 애통해하는 마음이 크다"며 "여기에 부자를 위하고 일방적으로 독주하는 현 정권에 대한 반발이 서민을 위해 살았던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그리움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추모 열기가 현 정부에는 부담스러울 수 있겠지만 국민들이 지금 원하는 게 무엇인지 되짚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위로를 얻기 위해…=기한없이 계속되는 경제난에 지치고, 당리당략에만 몰입하는 정치판에 식상한 시민들은 노 전 대통령 분향소를 찾아 눈물을 흘리며 가슴 속에 응어리진 답답함을 풀고 위로를 얻었다. 대통령이라는 최고의 자리에 올랐지만 평범하게 삶을 마감한 노 전 대통령 일생은 서민들의 마음을 끌어당겼다. 권위주의를 무너뜨리고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리더십도 새삼 주목받았다.
대한문 앞 분향소에서 만난 이인규(40)씨는 뜨거웠던 추모 열기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은 가난 때문에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고 고교 졸업 뒤 생계를 위해 부두에서 막노동을 했다. 인권 변호사와 비주류 정치인의 삶을 살면서 사회적 약자와 맞닿은 삶을 살았다. 대통령 퇴임 후에는 고향으로 내려가 서민들 곁에서 소탈한 삶을 이어갔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겠는가"라고 되물었다. 가족과 함께 서울역 광장 분향소에 조문 온 강정규(44)씨는 "서민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분이었다"면서 "잠시나마 그분을 멀리 했던 점이 마음에 남아 늦게나마 분향하러 왔다"고 말했다.
서울대 사회학과 박명규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은 서민적이고 탈권위적이고 이상적인 정치를 하고 싶어했던 분"이라며 "현실에 대한 답답함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복합적으로 표출돼 추모열기로 이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서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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