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대법원의 무죄확정 판결로 13년간 이어져온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헐값 발행을 통한 경영권 편법 승계 논란이 종지부를 찍었다. 삼성은 경영권 승계의 정당성을 확보했지만, 대법원은 형식논리에 매달려 편법 경영권 승계의 길을 터줬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주주배정 방식 CB발행은 배임 아니다=대법원은 주주가 가진 주식수에 따라 신주배정을 하는 주주배정 방식으로 CB가 발행될 경우 헐값이라도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봤다.
이 사건의 경우 법인주주들이 대부분 인수를 포기해 재용씨 남매에게 실권주가 넘어갔는데 결과적으로 주주들이 손해를 봤을 수는 있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손해가 없다는 논리다. 재용씨 남매에게 실권주를 넘기면서 주주들이 인수하는 가격과 동일한 가격을 제시한 것도 한번에 발행되는 CB의 발행조건이 동일해야 하는 점은 감안하면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번 판결에 참여한 대법관 11명 중 무려 5명이 에버랜드의 CB발행은 주주배정이 아니라 실질적으로는 제3자 배정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김영란, 박시환, 이홍훈, 김능환, 전수안 대법관은 "주주배정 방식의 CB가 발행되는 과정에서 가격이 현저히 낮고 주주가 인수하지 않아 실권되는 경우 실권주 발행을 중단하고 추후에 제3자 배정방식을 모색했어야 했다"면서 "이를 시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상 제3자 배정으로 봐야한다"고 밝혔다.
제3자 배정인 경우 헐값에 발행됐다면 배임죄가 성립한다. 대법원이 이건희 전 회장 등이 1999년 2월 삼성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제3자 배정방식으로 재용씨 남매에게 헐값에 넘겨 회사에 1500억원 상당의 손해를 끼친 혐의에 대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것도 이 때문이다.
◇에버랜드 사건 13년만에 종지부=에버랜드 CB 헐값 발행을 통한 편법 경영권 승계 논란은 1996년 12월 재용씨 남매가 에버랜드 CB를 주당 7700원에 인수하면서 시작됐다.
에버랜드는 당시 99억5459만원 상당의 CB를 발행했고 제일제당을 제외한 나머지 삼성그룹 계열사와 임원들이 CB인수를 포기하면서 재용씨 등 이 전 회장의 자녀들이 이 물량을 배정받았다. 재용씨는 이후 CB를 주식으로 전환하면서 에버랜드의 최대주주로 올라섰고 사실상 삼성그룹의 지배권을 확보했다. 곽노현 방송통신대 교수 등 법학자 43명은 2000년 불법 경영권 승계라며 이 전 회장 등 33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2003년 피고발인 중 허태학·박노빈 에버랜드 전 사장을 먼저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고 1, 2심 재판부는 모두 유죄 판결을 내렸다.
삼성그룹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가 2007년 10월 삼성 비자금을 폭로하면서 특검수사가 시작됐고 조준웅 특검은 이 전 회장 등을 배임과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이 전 회장은 항소심 재판에서 조세포탈 혐의만 유죄로 인정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과 벌금 1100억원을 선고받았다. 특검의 상고로 심리에 들어간 대법원은 난상토론 끝에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하지만 변호사 시절 삼성측 변호를 맡았던 이용훈 대법원장과 초기 검찰 수사에 관여한 안대희 대법관이 재판에서 배제돼 11명의 대법관만 참여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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