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문화] “공원에는 초대받지 않은 불법 방문자들이 많이 모여드는데, 이들은 비엔날레가 열리지 않는 비수기나 야간에 찾아들어 한국관 지붕 등에서 노숙을 합니다. 저는 예술에는 아마도 전혀 관심이 없을 이 한국관 방문 손님들로부터 영감을 받았습니다.”
세계 최대의 현대미술축제인 제53회 베니스비엔날레의 공식 개막을 앞둔 4일, 재독 설치작가 양혜규(38)씨는 한국관을 찾은 기자들에게 자신의 작품 ‘쌍과 반쪽-이름 없는 이웃들과의 사건들’을 소개했다. 그는 한국관의 단독 작가다.
베니스비엔날레는 크게 아르세날레(옛 조선소) 지역에서 열리는 본전시와, 자르디니(공원) 지역에서 열리는 국가관 전시로 이뤄진다. 한국관에 들어서면 맨 먼저 눈에 띄는 게 ‘쌍과 반쪽’ 영상물이다. 독일에서 활동 중인 작가가 어렸을 때 자란 서울 아현동 주변의 쇠락한 모습과 비엔날레가 열리지 않을 때면 노숙자 등의 쉼터가 되는 한국관 주변을 교차 촬영한 것이다. 내레이션을 곁들인 1시간15분 분량의 영상은 제목처럼 동질적이면서도 이질적인 ‘이름없는 이웃들’의 흔적을 담아낸다.
설치 작품 ‘살림’은 독일 베를린에 있는 작가의 집 부엌을 실제 크기로 재현해낸 것이다. 철제 프레임으로 싱크대의 뼈대를 제작한 뒤 부엌에서 쓰는 수세미, 접시, 어지럽게 얽힌 전선 등을 배치했다. 나머지 작품 ‘일련의 다치기 쉬운 배열-목소리와 바람’은 6대의 선풍기가 시간차를 두고 작동하면서 천장에 매달린 블라인드를 이리저리 흔들리게 한다. 여기에 향기가 분사되고 창문을 통해 들어온 자연광이 복합적으로 교차한다. 시간과 공간의 ‘다치기 쉬운’ 성격을 은유한 작품이다.
한국관 전시의 전체 주제는 ‘응결’(Condensation). 비엔날레 성격상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의미로 무장하고 있는데, 각국 미술계 인사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어 작가의 수상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는 분위기다. 양 작가는 한국관 작가로는 처음으로 비엔날레 본전시에도 작품을 출품했다. ‘공동체의 일상성’이라는 제목의 작품인데, 7개의 스탠드 조명을 이용한 설치물이다. 이 작품은 4일 미국의 카네기 인터내셔널에 8만 유로(약 1억4000만원)에 판매됐다.
작가는 서울대 조소과와 프랑크푸르트 예술아카데미를 졸업했으며, 현재 독일의 한 대학에서 객원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7일 개막돼 11월22일까지 5개월여간 진행되는 올해 베니스비엔날레의 주제는 ‘세상 만들기’(Making Worlds)로 스웨덴 출신의 대니얼 번바움(45)이 총감독을 맡았다. 본전시에는 작가 90명, 국가관에는 사상 최다인 77개국이 참여했다. 베니스(이탈리아)=국민일보 쿠키뉴스 김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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