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문화]‘역사 앞에서’의 저자 고(故) 김성칠의 아내인 이남덕(90·전 이화여대 교수)씨는 현재 노환으로 와병 중이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역사학자인 아들 김기협(58)씨는 24일 “어머니는 2년 전 갑자기 쓰러진 뒤 경기도 일산의 한 요양병원에서 지내왔다. 특별한 질병은 없지만 거동이 불편하고 기억력까지 쇠퇴해 혼자서는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힘든 상태”라고 전했다. 그러나 이씨는 6·25 전쟁 당시 현명하면서도 결기 있는 성품으로 그 지옥 같던 시기를 남편 못지않게 꿋꿋이 헤쳐온 인물이다.
이씨는 1942년 경성제대 조선어문학과에 입학한 직후 첫 한문 강의시간에 앞자리에 앉은 학우 김성칠을 운명처럼 만나 2년 뒤 결혼했다. 서울 정릉의 한 마을에 살다 6·25를 맞은 그는 자식들은 물론 직장에서 해고된 남편까지 건사하며 생계를 꾸려갔다.
이씨는 1993년 ‘조국 수난의 동반자’라는 글에서 “나는 이 넓은 집에서 양계도 한다고 씨름도 하고 염소 토끼 오리 등을 키운다고 눈코 뜰 새 없는 농가생활에 골몰하던 중인데 전쟁을 맞이하여 내 사무는 보통 바쁜 것이 아니었다. 개를 위시한 위에 든 동물가족들을 건사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직장에서 떨려난 남편과 육촌 시동생의 신변보호에도 내가 방패막이 노릇을 안할 수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어 “세 아이의 어머니인 나로서 겪은 전쟁 경험은 어떻게 하면 이 목숨들을 살리느냐 하는 생명과 육체 보전에 대한 절박한 관점에 섰던 것 같다”면서 “제일 문제는 어린애들의 건강 문제였다. 그해 들어 홍진으로 시작해 백일해, 외마마, 복학, 그사이에도 감기와 체를 쉴새없이 앓았었다”고 돌아봤다.
각종 질병과 식량난 속에 노심초사하며 가족을 보살피던 중에도 좌익 측에서 주관하는 각종 강습, 집회, 선거에 거의 매일 불려다녔다.
이씨는 “날마다 강습이요, 선거요, 시위요, 노래요 하면서 집회 때문에 안 모이는 날이 없었는데 가장 괴로운 것은 작업에 동원되는 일이었다”며 “집안식구 먹거리를 찾아서 조반석죽이나마 끼니를 이어가는 일도 힘에 겨운데, 그리고 폭격이 계속되는 속에서 아이들 옷만이라도 보따리에 챙겨놓고 여차하면 도망갈 준비에 정신이 없는 판에 작업 동원령이 내리면 가장 괴로운 일이었다”고 술회했다.
그러나 이씨는 연약하기는커녕 강단 있는 인물이었다. 인민위원회를 등에 업어 서슬 퍼렇던 마을 반장의 부인이 김성칠을 겨냥해 “반동분자네”로 칭하자 이씨가 “반동분자가 무슨 뜻이냐?”며 고함을 치고 대들어 꼬리를 내리게 했다는 일화도 전한다. 김성칠의 일기에는 이씨에 대한 사랑과 존중의 마음이 곳곳에 묻어나있다.
이씨는 1951년 남편이 갑작스럽게 괴한의 총에 맞아 세상을 뜬 뒤 혼자서 네 자녀를 키우며 국어학에 계속 정진해 동아대와 숙명여대 교수를 역임했다. 58년 이후에는 이화여대 국문과에서 재직하다 86년 정년퇴임했다. 필생의 역저 ‘한국어 어원 연구’를 비롯해 여러 저서가 있다.
셋째 아들인 기협씨는 서울대 사학과를 나와 경북대에서 석사, 연세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계명대 사학과 교수, 중앙일보 문화전문위원 등을 지냈으며 2002년부터는 중국 옌벤과 한국을 오가며 동아시아 역사를 문명사 관점에서 정리하고 있다. 지난해 ‘밖에서 본 한국사’(돌베개)를 펴내 화제가 됐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호경 기자
hkkim@kmib.co.kr
▶뭔데 그래◀ 검찰의 PD수첩 작가 이메일 공개 어떻게 보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