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경제] 사람은 역시 외모로 가늠하기 힘들다. 곱상한 외모와 차분한 말투, 논리정연한 화술만으로 본다면 그녀는 교수나 연구원, 법률가 쪽에 가까워보인다. 하지만 이력서를 들춰보는 순간 첫인상과 동떨어진 삶의 궤적에 놀라게 된다.
‘대한민국 여성 토목기사 1호.’
손성연(49) CNC종합건설 사장에게 꼬리표처럼 따라 붙는 타이틀이다. 경기 침체로 지난해부터 올 상반기까지 CNC와 비슷한 규모의 중소 건설업체들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졌지만 CNC는 창사 이래 10년째 매년 ‘우상향’ 행진 중이다. 2007년 200억원이었던 매출 규모가 지난해 340억원을 기록한데 이어 올해 400억원(목표)까지 내다보는 알짜 기업이다. 대한건설협회 소속 7000여 회원사들 중에서도 실제 기업을 운영하는 여성 CEO가 5명이 채 되지 않는 국내 현실을 감안하면 손 사장의 경영 성과는 업계의 주목 대상일 수밖에 없다.
“거칠기로 소문난 건설 바닥에서 여성CEO로 살아남은 비결이 뭔가요?” 12일 경기도 안양시 관양동 사무실에서 30년 넘게 한우물을 파온 그녀에게 가장 많이 들었을 법한 질문을 건넸다.
“오너(Owner)는 가지 말아야 할 길은 가지 않도록 룰을 만들고 지켜야죠.”
선뜻 이해하기 힘든 답변이었다. “저는 시야가 좁은 사람이에요. 맡은 일 외에는 딴 곳에 눈을 돌릴 줄 모른다는 게 클라이언트(고객)에게 어필이 된 것 같고요. 또 하나는 이윤을 남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믿음을 먼저 심어주려고 애써왔던 게 결국 고객이 우리 회사를 다시 찾게 만들더군요.”
그녀에게 토목은 생뚱맞게 다가왔다. 대학 측에서 4년 전액 장학금을 준다기에 적성 불문하고 명지대 토목공학과에 들어갔다. 학과는 물론이고 당시 1000여명을 헤아리던 경인지역 대학 토목공학과 학생들을 통틀어 여자라고는 그녀 뿐인 시절이었다. ‘홍일점’이라고는 하나 학과 선·후배들은 여자로 봐주는 법은 없었다. 그냥 남자들 옆에서 묻혀 지내야 했다. “대학시절 내내 우울했던 기억 밖에 없어요. 하지만 토목을 전공한 이상 다른 길이 없다고 생각하고 토목기사 자격증을 딴거죠.”
1982년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남광토건을 비롯한 여러 건설사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하며 현장실무를 차곡차곡 익혔다. 그리고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2000년 4월 경기도 안양에 본사를 둔 CNC를 창립했다.
올해로 만 10년째인 CNC는 소위 ‘3무(無)’를 추구하는 기업이다. 접대가 없고 속임수가 없고, 한번의 거래로 끝나는 이른바 ‘단타’ 거래가 없다. 접대는 업주와 계약자 간에 으레 이뤄지는 관행이지만 손 사장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접대 비용으로 공사에 더 신경쓴다면 고객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손 사장은 자신의 주관을 실천에 옮겼다. 접대를 안하는 대신 현장을 뛰어다니며 공사 기초부터 마감까지 살피고 또 살폈다. 철근 배근이나 거푸집 조립이 제대로 돼 있지 있으면 매번 해체하고 다시 설치하도록 했다. 도배 마무리가 깔끔하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찢어버리고 나올 정도였다. 현장 직원들에게는 까탈스러운 사장이었지만 고객들에게는 믿을만한 건설회사 사장으로 입소문을 탔다. “회사를 세운지 3년쯤 지나니까 이전에 공사를 맡기셨던 고객들이 또 다른 공사를 맡아달라고 요청하더라고요.”
바로 그것이었다. 이전까지 자신의 ‘3무 경영’을 반신반의해왔던 손 사장은 자신감과 교훈까지 얻었다.
“여자인 제가 남성들의 능력을 못 따라가는 부분은 분명히 있어요. 하지만 내가 그들보다 잘하는 분야도 반드시 있고 정성을 다하면 고객들에게 통한다는 걸 깨달았죠.” 장래 토목 CEO를 꿈꾸는 후배 여성 토목 공학도들을 만날 때마다 빼놓지 않는 손 사장의 핵심 메시지이기도 하다. 안양=국민일보 쿠키뉴스 박재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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