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해체,탈선…절망의 고리 끊어줘야

가정 해체,탈선…절망의 고리 끊어줘야

기사승인 2009-07-13 18:30:00


[쿠키 사회] 가정이 무너지면 아이는 위기로 몰린다. 우리 사회에 결손가정은 소년소녀가장 가정, 한 부모 가정, 조손 가정(조부모와 함께 사는 가정)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양친과 함께 살고 있더라도 경제적 빈곤에 내몰려 방치된 ‘사실상의 결손가정’도 점차 늘고 있다. 가정이 온전하지 못한 아이들에게 의무·무상교육조차 사치일 수 있다. 하지만 달리 기회가 없는 이들에게 교육이야말로 값진 투자라는 걸 일깨워주고 우리 사회가 따뜻하게 감싸안아야 한다.

15세 소년 팔에 ‘차라리 죽자’

지난 9일 경기도 수원 시내 한 중학교 상담실에서 만난 한민영(가명·15)군의 왼쪽 팔에는 ‘차라리 죽자’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문구용 칼날이 살 속을 헤집어도 아프지 않았단다. 손목에는 칼로 자해한 흔적도 있었다.

태어나자마자 민영이는 부모에게 버려졌고, 피부관리실을 다니는 이모가 맡아 키웠다. 이모 역시 경제적으로 어려워 민영이는 사찰과 보육원을 전전했다. 민영이는 세 살 때 자신을 버리지 말라고 울며 어머니와 전화 통화한 기억이 생생하다.

민영이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담배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현재는 하루 한 갑을 피운다. 민영이는 여자 친구들과 노래방, 술집 등으로 몰려다니며 흡연을 한다. 학교에서 민영이는 소문난 폭력 학생이다. 괴롭힘을 당하지 않은 학생이 없을 정도다. 지난해에는 이웃 학교 학생들과 패싸움을 벌여 경찰서도 다녀왔다. 현재는 어머니의 간곡한 만류로 자제하고 있지만 ‘욱’하는 성격은 어쩔 수 없단다.

민영이를 관찰해온 교사는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는 애정결핍과 기성세대에 대한 배신감에 따른 반발 심리가 공통적으로 나타나며 남자 아이의 경우 폭력, 여자 아이의 경우 성비행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어머니에게 주먹, 눈물로 사죄

부천에 사는 김성철(가명·14)군은 분노를 잘 억제하지 못한다. 가족들에게 자주 손찌검을 했던 아버지가 싫었지만, 아버지가 사고로 세상을 뜬 후 성철군이 아버지의 폭력을 대물림했다. 성철군은 평소 말도 없고 얌전한 성격이지만 화가 나면 어머니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누나에게 주먹과 발길질을 해댄다.

그러나 분노가 가라앉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무릎을 꿇고 눈물로 사죄한다. 성철군은 자신도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단다. 성철군은 현재 충동조절 장애 진단을 받고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충동조절장애가 계속되면 반사회적 성격장애나 사이코패스로 발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권해수 조선대 상담심리학부 교수는 “가정 폭력을 겪은 아이들은 아버지에 대한 증오,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무기력함에 대한 원망이 동시에 잠재돼 있다고 봐야 한다”면서 “경제적 형편 등 외부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방식을 자신도 모르게 학습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방학은 외로움 그 자체”

지난 8일 강원도 횡성의 한 초등학교에서 만난 민정인(가명·11)양은 초등학교 1학년 때 부모 이혼 후 아버지와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어머니의 빈자리를 채워주던 자상한 아버지는 지난해 10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할머니와 중학교 다니는 언니가 유일한 가족이 됐다.

하지만 할머니는 농사일로 바쁘고 언니는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쏘다닌다. 학교를 마치고 오면 정인은 항상 혼자다. 인가가 드문 산골이어서 친구 집에 놀러 가거나 친구를 초대하기도 어렵다. 늘 혼자 먹고, 텔레비전을 보고 인터넷 게임도 하며 할머니를 기다린다.

정인은 방학이 싫다. 가끔 할머니를 따라다니며 농사일을 돕지만 친구들과 선생님이 있는 교실이 그립다.

권 교수는 “조손가정에서는 조부모가 아이 부모의 죽음이나 가출을 아이에게 화풀이하는 2차 피해가 많다”라며 “구체적인 학대로 나타나기보다 ‘부모 잡아먹은 아이’라는 식으로 은밀하게 구박하는 경우가 많아 민양의 경우 전문적인 상담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증가하는 결손가정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가정의 숫자가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1990년 88만9000가구였던 한 부모 가구 숫자는 2000년 114만7000가구, 2006년 137만가구로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다.

빈곤과 실직, 학대 등에 노출돼 보호가 필요한 아동의 숫자도 2000년 1716명에서 2007년 5354명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기초생활수급자 가구수도 2001년 69만8075에서 2004년 75만3681건, 2008년 85만4205가구로 매년 급증하고 있다.

3년째 전문 상담교사로 활동 중인 이모(29·여) 교사는 “정에 목마른 아이들은 작은 관심과 배려에도 크게 감동을 한다”면서 “가정이 제 기능을 못하면 정부, 지역사회 등이 연계해 아이들을 관찰, 지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뭔데 그래◀ 사랑이라는 이름의 구속…김연아 아이스쇼 파문, 어떻게 보십니까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이도경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