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희망을 말하다]술병 속에 방치된 지원이를 도울 길은…

[교육, 희망을 말하다]술병 속에 방치된 지원이를 도울 길은…

기사승인 2009-07-13 18:05:02


[쿠키 사회] 강원도 횡성에 살고 있는 지원(10·가명)이의 집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빈 소주 세 병과 맥주 페트병 하나가 앞 뜰에 뒹굴고 있었다.

본보 취재진은 지난 8일 마을 가장자리 골목 끝에 있는 지원이의 집을 어렵사리 찾아갔다. 지원이는 슬레이트 축사를 개조해 만든 집에서 고3인 오빠와 단 둘이 살고 있었다.

“이 술은 누가 마셨니?”

지원이는 잠시 뜸을 들인 후 “얼마 전에 이모가 와서 마셨어요”라고 말한뒤 취재진을 외면했다.

대문 옆에 있는 야외 화장실 문짝은 떨어져 나가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안에는 사방에 오물이 묻어 발을 디딜 수조차 없었다. 바닥엔 구더기 알이 새까맣게 썩어 악취가 진동했다.

소를 기르던 축사로 보이는 옆 마당을 지나 부엌과 연결된 뒷마당으로 들어섰다. 수많은 국산·외국산 담배꽁초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소주병은 50개가 넘어보였다. 지원이에게 이 술을 누가 마셨느냐고 재차 물었다.

“모르겠어요.”

아까와 달리 지원이는 고개를 떨궜다.

지원이 방 안에선 본드가 눈에 띄었다. 오빠 방에는 가구는 전혀 없고, 책이라곤 바닥에 나뒹구는 운전면허 필기시험 문제지가 전부였다. 지원이는 대부분 질문에 고개를 좌우로 돌리기만 했다. 질문이 이어지자 “빨리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러 가야 한다”고 자리를 피했다.

이웃 주민들은 오누이를 두고 안타까워했다.

“에휴 말도 마. 매일 밤마다 학생 예닐곱명이 와서 술 마시고 담배 피우지 뭐. 남녀 할 것 없이 말이야. 옛날 지 엄마가 쓰던 방에서 밤마다 컴퓨터로 오락하고 놀고 자더라고….”

지원이는 지난해 8월 아버지를 여의었다. 막노동과 잡일로 생계를 꾸려간 아버지는 뙤약볕 속에서 남의 집 농사일을 도와주다 집으로 오는 길에 쓰러져 그 길로 숨을 거뒀다. 급성 백혈병을 앓던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3개월 만에 집에서 눈을 감았다.

불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올 3월 비오는 어느 날 밤 언니마저 사라져 그다음 날 새벽 그 지역 성당 앞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열아홉이던 언니는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 정신 이상이 생겼다고 했다. 경찰은 언니를 자살로 결론지었다.

주변에는 지원이를 염려하는 이웃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어떻게 도와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는지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있다.

한 주민은 이렇게 말했다.

“언니가 죽고 나서 돌봐줄 사람이 없으니까 지원이는 경기도 수원에 있는 이모집으로 갔어. 그런데 3개월 만에 다시 왔어. 피붙이인 오빠랑 같이 있고 싶었던 것 같아. 지원이를 도울 방법이 없어.” 횡성=국민일보 쿠키뉴스 모규엽 이도경 기자
hirt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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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
모규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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