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이 불러오는 폭력, 소외감이 빚어내는 비행…다문화 가정 자녀들

차별이 불러오는 폭력, 소외감이 빚어내는 비행…다문화 가정 자녀들

기사승인 2009-07-21 17:42:01

[쿠키 사회]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은 가정불화, 게임중독, 학교폭력, 따돌림, 약물 등 다양한 종류의 위기 상황에 중첩적으로 노출된 경우가 많다. 언어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데다 피부색이 다른 데서 오는 편견과 소외로 깊은 상처를 받기 쉽다. 부모의 출신 국가와 삶의 터전인 한국 사이에서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는 아이들은 외부 세계에 대한 분노를 때로는 자살 시도나 폭력으로 표출한다.

“냄새 난다”는 말에 자살 소동

경기도 부천의 한 중학교에 다니는 플로라(가명·14)양은 지난해 친구들로부터 “몸에서 냄새가 난다”는 놀림을 받고 학교 옥상에서 자살 소동을 벌였다. 피부색도 놀림감이었지만 몸에 배어있는 특유의 냄새가 집단 따돌림의 이유가 됐다.

인도네시아인 가정의 무남독녀로 한국에서 나고 자란 플로라는 이맘(이슬람 성직자)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학교 외에는 한국 문화와 단절된 생활을 강요받았다. 텔레비전 시청은 물론 옷차림과 먹는 것까지 아버지의 규율에 따랐다. 라마단(이슬람교의 금식 기간)에는 학교에서도 금식을 했다. 그러나 플로라가 점차 성장하면서 아버지와 대립했고, 플로라가 대들 때마다 아버지는 공장 노동자인 어머니와 크게 싸웠다.

집단 따돌림과 가정불화는 플로라를 인터넷 게임에 빠져들게 했다. 사이버 공간에서는 피부색도 냄새도 문제되지 않았다. 밤을 새우는 날이 많아졌고, 운동량이 부족해 체중은 늘어났다. 친구들의 놀림은 더욱 심해졌다. 어휘력이 부족해 하위권이었던 성적은 곤두박질쳤다. 플로라의 좌절은 깊어갔다.

자살 소동 후 플로라와 정기적으로 상담하고 있는 교사는 “정체성 혼란, 이성문제, 게임중독, 학습부진, 따돌림 등이 주는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폭발한 것”이라며 “활달했던 아이가 자살을 결심할 때까지 누구도 몰랐다”고 말했다.

선생님에게 우유팩 던져

강원도 횡성의 초등학교 5학년인 성철(가명·12)이는 이유없이 화를 잘 내고 아이들을 때리는 등 폭력성향이 강하다. 아버지가 건설현장 노동자이고, 어머니가 필리핀 출신인 성철이는 지난해 학교 건물 2층에서 창문 아래로 지나가는 선생님에게 우유가 든 팩을 던졌다. 그 선생님으로부터 꾸지람을 들었다는 게 이유였다.

성철이는 아이들로부터 기피 대상이었다. 괴롭힘을 당하지 않은 아이를 찾기 어려웠다. 한 여학생은 “학교에서 제일 미운 아이에요”라며 혀를 내둘렀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한국 어휘가 부족해 학습능력이 떨어지고, 남들과 다른 가정환경에서 오는 열등감, 유일한 가족이나 다름없는 어머니와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데서 오는 답답함 등이 성철이를 폭력적인 아이로 만든 것 같다는 게 지도교사의 설명이었다.

편견과 가정폭력 “한국 떠나고 싶어”

어머니가 몽골인인 지민(가명·16)양은 부모가 선진국 출신인 다문화 가정에 비해 동양권 출신 자녀들을 차별하는 한국인의 차가운 시선이 못마땅하다. 지민이는 최근 길을 잃어 지나가는 사람에게 목적지를 물어봤다. 말투가 이상하다고 여긴 그 남성은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되물었다. 지민이가 “몽골에서 왔다”고 답하자 그 남성은 갑자기 인상을 찌푸리며 “알아서 가라”고 쏘아붙였다고 지민이는 전했다.

지민이 어머니는 몽골에서 몽골 남성과 결혼해 몽골에서 지민이를 낳았지만 이혼한 뒤 2년 전 한국 남성과 결혼했다. 그러나 지난해 1월 한국에 온 이후 매일같이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두 차례 유산을 했다. 지민이의 배 다른 오빠도 지민이 어머니에게는 반말을 했다. 결국 지민이 어머니는 올 초 한국인 남편과 이혼했다. 지민이는 “미국에 가서 디자인 공부를 한 후 몽골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급증하는 다문화 가정

성철이가 다니는 횡성의 초등학교는 전체 83명 가운데 무려 10명이 다문화 가정이다. 몽골, 동남아, 중국 등 다양한 지역에서 온 여성과 한국인 노총각으로 가정이 꾸려져 있다.

교육과학기술부 자료에 따르면 다문화 가정의 취학 인구는 매년 급증 추세다. 국제결혼가정 자녀의 경우 2006년 7998명이었으나 2008년에는 1만8778명으로 2배 이상 급증했다. 특히 초등학생은 2006년 6795명에서 2008년 1만5804명으로 역시 2배 이상 늘어났다.

조선대 서덕희 교수는 “농촌지역의 다문화 가정 자녀들의 경우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매우 딱한 처지에 놓여 있다”며 “다문화 가정을 지금처럼 방치한다면 우리 사회가 앞으로 혹독한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횡성·부천=국민일보 쿠키뉴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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