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희망을 말하다―우울증&ADHD] 마음이 아픈 아이들

[교육,희망을 말하다―우울증&ADHD] 마음이 아픈 아이들

기사승인 2009-07-23 18:06:00

[쿠키 사회] 좁은 어깨에 깡마른 몸의 정우(13·가명)가 23일 서울 동부 위센터 상담실에 들어섰다. 푸른색 셔츠 차림의 소년은 상담 선생님과 눈을 맞추지 못했다. 묻는 말에는 입을 가린 채 ‘예’ 혹은 ‘아니오’로 조용히 대답했다.

정우는 지난 3월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학교에 주차된 외제 차량을 날카로운 물건으로 긁어댔다. 수백만원 상당의 피해를 입히는 장면은 고스란히 CCTV에 담겼다. 친구들과 싸움 한 번 해본 적이 없던 정우가 이런 돌출 행동을 하리라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우울증으로 인한 돌출 행동=정우는 우울증 초기 증세 진단과 함께 상담 치료를 받았다. 우울감이 지속되면서 일시적으로 공격성이 표출된 것이다. 아이가 조금 소극적일 뿐이라고 생각한 부모에게는 청천벽력이었다. 정우는 스스로를 ‘큰 개미’로 표현했다. “머리가 나쁘고 엄마가 워낙 감시하니 개미처럼 막일이라도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상담 일지에 적었다. 동대문시장에서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보태던 어머니는 “공부는 잘 못하더라도 올바르게 커나가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아동 청소년의 정신건강에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보건복지가족부와 교육과학기술부가 2007년 중 1∼고 3 학생 7만4698명을 상대로 실시한 청소년 건강행태 온라인 조사 통계를 보면, 전체의 41.3%가 “1년 동안 2주일 이상 일상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슬프거나 절망감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는 응답은 23.7%였다. ‘최근 1년 안에’ ‘심각하게’ 자살을 떠올려 봤다는 대답이 5명 중 1명꼴이었다.

대전에 사는 보라(13)양은 지난 3월 중학생이 된 이후 최근까지 점심 시간에 급식을 먹지 못했다. 아이들이 “냄새난다”며 괴롭혔기 때문이다. 평범한 회사원과 주부인 부모는 착하고 순진한 보라가 아이들로부터 ‘정신지체 3급’이라며 놀림을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오히려 떨어지는 성적을 어떻게 만회할까 하며 인근 학원을 알아보던 중이었다.

집중적으로 왕따를 당한 보라는 어느 날 학교 건물 옥상 난간으로 올라갔다. 다행히 난간에서 뛰어내리기 전에 발견된 보라는 곧바로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보라는 심리치료 과정에서 “새처럼 뛰어내리면 저 세상에서 천사가 될 수 있을까”라고 말했다. 소녀는 화장실까지 따라와 괴롭히는 친구들이 두려웠다. 밥을 혼자 먹기 힘들 정도로 소심한 성격이었다. 보라는 부모와 함께 상담을 받은 끝에 미술 치료를 통해 우울증을 극복하는 과정에 있다.

◇아동기의 복병, ADHD=지난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은서(가명·8)는 3개월 만에 소아정신과를 찾아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진단을 받았다. 은서는 수업시간에 교실에서 무작정 밖으로 뛰쳐나가거나, 친구들과 자주 싸워 교장 선생님까지 은서의 동태를 매일 체크할 정도였다.

병원에서 은서는 “저, 심장을 때려서 죽을 거예요. 저, 칼로 목을 잘라서 죽을 거예요”라고 소리쳤다. 아버지는 “산만하고 분노 조절을 못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어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했다. 은서는 지역 보건센터의 소개로 1년 동안 가족상담과 약물치료를 병행했다.

주부 김성은(가명)씨는 올해 5월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아들(7)이 ADHD 성향을 보인다는 설명을 들었다. 하지만 매달 20만원 이상씩 드는 병원비가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대신 미술 치료와 상담 치료로 방향을 돌렸다. 돈도 돈이지만 김씨는 “정신과에 가면 이후 진료 기록이 남아 보험을 안들어 준다는 소문이 많다”고 했다.

이에 대해 생명보험협회는 “정신과 치료를 이유로 보험가입을 거부할 수는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개별 질병의 위험 요인을 고려해 보험료 산정과 보험 가입 유무 결정을 내리는 것은 업계의 재량이라는 이유로 보험가입을 거부하는 행태가 적지 않다.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조수철 김붕년 김재원 교수팀은 지난 2월 유럽 소아 청소년 신경정신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서울시내 6개 초등학교 학생 2493명에 대해 ADHD 검사를 실시한 결과, 유병률이 5.9%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증상이 가볍지만 학업이나 또래 관계에서 유사하게 문제를 드러내는 아이들의 비율은 9.0%였다. 이는 초등학교 기준으로 한 반에 4∼5명(13∼15%)은 ADHD에 관한 진료와 상담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민간에서 추정하는 실태가 이 정도인데도 정부 차원의 전수 조사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김붕년 교수는 “보건 교사 및 상담 교사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학생에게는 감정 조절 능력 등을 가르치는 교육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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