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이명박 대통령이 입학사정관제 확대 의지를 강하게 표시함에 따라 제도의 확대 속도와 폭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교육당국은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진화하고 나섰지만 향후 입학사정관제 확대는 예상보다 훨씬 더 가속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입학사정관제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 각 대학이 내놓은 방안들이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의구심을 표시하고 있다. 지금처럼 성급하게 입학사정관제를 확대시키면 기존의 획일화된 서열평가를 깨뜨려 공교육 강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제도의 취지를 살리기 힘들어지며, 나아가 부정 입학이나 음성적인 고교등급제 등의 수단으로까지 악용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고 우려하는 모습이다.
◇대학들의 공정성 확보 방안이 실효성 있을까=28일 대학가에 따르면 창의성과 잠재력을 잣대로 삼는 정성적(定性的) 평가인 입학사정관제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마련해놓고 있다.
이 대통령이 전날 모범 사례로 언급했던 카이스트는 전형 단계별로 평가단을 따로 두고 입학공정관리위원회, 평가모니터링제 등을 운영하며, 포스텍도 전임 사정관 평가, 교수 사정관 평가, 입학위원회 심의, 입학공정관리위원회 심사, 교무위원회 최종 합격자 의결 등 총 5단계 심사를 통해 학생을 선발한다. 고려대는 대학입학전형관리위원회, 입학시험출제관리위원회, 대학입시공정관리 대책위원회, 옴부즈맨 제도 등을 마련해놓고 있다.
하지만 대학들이 마련한 안전판이 수험생과 학부모, 일선 고교 교사들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신뢰성까지 확보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많다. 각 대학이 정부 예산을 지원받기 위해 경쟁적으로 별다른 준비 없이 일을 진행시켜 왔다는 지적도 있다. 당장 2010학년도 입시에서 입학사정관을 통해 선발하는 인원은 47개 대학 총 2만690여명으로 지난해(40개 대학·총 4555명)보다 무려 4.5배나 많다.
엄민용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변인은 "입학사정관제는 대학들이 수년, 혹은 수십년 간의 경험을 축적한 뒤에야 제대로 시행할 수 있는 제도"라며 "입학사정관 숫자도 많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제도를 확대하다 보면 고교등급제 실시 의혹 등 각종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고 말했다.
대입 업무를 총괄하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지난 5월 제도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 내놓은 '4단계 가이드라인'도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많다. 사전공지, 서류심사, 심층면접 및 토론, 최종선발 등 4단계로 운영토록 한 가이드라인은 제도 시행을 위한 가장 기초적인 '예시안'을 제시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또 대학들의 협의체에 불과한 대교협이 각 대학에 대해 감시자 역할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비정규직 입학사정관들 신분 보장 필요"=일선 입학사정관들 상당수가 비정규직 신분이라는 점도 문제다. 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최근 전국 39개 대학 입학사정관 230명들의 고용 형태를 조사한 결과 정규직 신분인 입학사정관은 지난달 기준 20명(11.5%)에 불과했다. 수험생 당락을 좌우하는 입학사정관들의 신분 보장이 확실하지 않을 경우 대학 측의 지시에 입학사정관들이 일방적으로 휘둘릴 수 있어 부정 입학 등의 문제가 불거질 공산이 커지게 된다.
김삼호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비정규직인 입학사정관들이 학교로부터 불미스러운 지시를 받았을 경우 당당하게 거절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며 "각 대학이 입학사정관제를 중장기적인 입시 제도로 생각하고 있다면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킨 뒤 오랫동안 함께 일할 생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은아 숙명여대 입학사정관팀 팀장은 "입학사정관이 비정규직이어서 공정하게 전형을 진행하는데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걱정하지는 않지만 지속적으로 이 제도를 시행해나갈 계획이라면 신분 보장 문제를 개선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박지훈 권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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