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소녀가장 수연이(가명·17)는 올 초만 해도 학교를 다니지 않고 술·담배를 입에 대는 ‘문제아’였다. 하지만 불과 4개월여 만에 수연이는 3년 전에 그만둔 학교를 다시 다니고 다른 아이들처럼 미래에 대한 꿈을 키우는 보통 아이로 돌아왔다.
기자는 지난달 28일 오후 전북 전주시 중화산동의 한 원룸을 찾았다. 수연이가 여동생 소연(가명·12)이를 데리고 새로 둥지를 튼 지 한 달 남짓 되는 곳이었다. 자매는 때마침 방문한 전주교육청 위센터 곽영신(49·여) 사회복지사, 대안학교 최지남(26·여) 선생님 등과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었다.
“중학교를 졸업하면 멀리 있지만 시설이 좋은 쳿쳿고등학교에 가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돼요?”
수연이는 고3 졸업반인 자기 나이 또래들과 달리 이제 중학교 3학년이다. 하지만 졸업과 진학을 앞둔 설렘과 기대는 수연이를 들뜨게 했다.
곽 복지사는 웃으며 “△△고등학교가 집 근처에서 다니기가 좋고, 그 학교 교복이 이쁘다”고 답했다.
곁에 있던 소연이가 끼어들었다. “나도 내년이면 중학생이 되니까 예쁜 옷이랑 옷장 좀 사달라”고 졸랐다. 모녀지간에 나누는 대화들처럼 편안해 보였다.
자매의 삶이 달라진 건 지난 3월 전주교육청 위센터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에서 비롯됐다. 발신지는 인근 모래내 경찰지구대였다. 자매 둘이 사는 곳에 불량 학생들이 몰려와 매일 혼숙을 하고 술을 마시고 있다는 것이었다. 경찰은 가끔 들르는 순찰로는 통제가 어렵고, 이대로 내버려두기엔 아이들이 불쌍하다며 위센터에 도움을 요청했다.
위센터는 초등학생 소연이를 먼저 만났다. 상담 결과 신속히 개입해야 할 위기 학생들로 판명났다. 아버지는 소연이가 세 살 때 돌아가셨고, 잦은 음주로 간경화 판정을 받은 어머니는 4년 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수연이는 학교를 그만두고 매일 불량 친구들과 술집을 드나들었다.
위센터는 대책회의를 연 뒤 곽 복지사를 수연이 집으로 보냈다. 곽 복지사가 문을 열었을 때는 대낮이었는데도 노랑머리를 한 수연이는 가출한 친구들과 술에 취해 자고 있었다. ‘악취가 나는 쓰레기 더미 속에서’ 자고 있던 수연이는 잠을 깨우는 곽 복지사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수연이는 “밤늦게 놀다가 늦게까지 자고 있는데 일어나라고 깨우는 게 너무 귀찮았다”고 쑥스러운 표정으로 당시를 회상했다.
위센터는 수연이를 설득해 전에 다니던 중학교 3학년으로 복학시켰다. 다만 오랜 기간의 공백을 감안해 원적 학교 출석으로 인정되는 도교육청 소속 대안학교로 보냈다.
이윽고 길고 긴 등교 전쟁이 시작됐다. 곽 복지사와 최 선생님은 매일 아침 수연이를 찾아갔다. 술에 취해 자는 수연이 친구들을 일일이 깨워 집으로 돌려 보내고,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수연이를 달래느라 진땀을 흘렸다.
수연이는 마지못해 따라 나섰지만 새로운 생활 패턴에 익숙하지 않아 고통스러워 했다. 4년 가까이 제대로 치우지 않은 집에서 무분별한 생활을 하느라 수연이 몸에는 피부병이 나 있었다. 갑자기 규칙적인 생활을 하기 시작하자 온 몸에 열이 나고 끙끙 앓기 시작했다. 그보다 더 힘든 건 이전에 같이 술·담배를 하던 친구들이 여전히 찾아오는 것이었다. 수연이는 이제 그만 수렁에서 탈출하고 싶어했다.
위센터는 주민자치센터와 대한주택공사에 문의했다. 때마침 미분양된 원룸을 사들이고 있던 주공은 아이들에게 선뜻 원룸 하나를 거저 내놓았다. 지난 6월 이사 가던 날 자매는 그동안의 생활이 지긋지긋했는지 옷가지 등 모든 것을 내버려두고 옛 집을 떠났다. 학교에서 준 컴퓨터와 책만 갖고 나왔다. 예전에 친하게 지냈던 아이들과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 사이 수연이도 달라졌다. 지속적인 상담과 학교 수업을 받으면서 그녀에게도 새로운 꿈과 목표가 생겼다. 대안학교에서 만난 어린 급우들을 보면서 얻은 깨달음도 컸다. 동생과 단 둘이 이 세상을 살아 가려면 아무 생각없이 지내지 말고,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수연이는 나지막히 말했다. “남보다 많이 늦은 만큼 빨리 고등학교에 가서 공부해 남을 도우는 간호사가 되고 싶어요” 전주=국민일보 쿠키뉴스 모규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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