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前대통령 서거] 1964년 국회본회의 5시간30분 필리버스터 연설

[김前대통령 서거] 1964년 국회본회의 5시간30분 필리버스터 연설

기사승인 2009-08-18 14:33:00


정치인생 55년… 그 역정과 일화

[쿠키 정치]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타고난 정치인이었다.

화술의 천재라고 불릴 만큼 남다른 언변의 힘을 빌려 허허벌판에서 외롭게 일어섰고, 명성을 쌓았다. 대중연설에 있어서 그는 어려운 언어를 피하고 격정적·감정적·단순논리로 청중을 웃기고 울리며 끝내는 그들을 원하는 방향으로 선동해 나가곤 했다. 특히 경쟁자나 정부의 약점을 과감하게 그리고 풍자적으로 비판해 듣는 이의 속을 시원하게 했다.

DJ는 이상과 현실의 조화를 신조로 삼은 지도자였다. 원칙과 목표를 정하되 그것을 실현해나가는데 있어 타협과 양보의 가능성을 항상 열어놨고, 대의명분만큼 실리도 냉철하게 따졌다. "정치인은 서생(書生)적 문제의식만으로는 안되며 상인적 현실감각을 함께 갖춰야 한다" "국민이 이해하고 따라오지 못하면 기다리고 설득해야 한다. 절대 국민의 손을 놓치면 안되고 반발짝만 앞서 나가야 한다"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과도 같다" 등 평소 즐겨 쓰던 문구들은 그의 정치철학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었다.

이는 유신정권의 대표적 피해자인 그가 '유신 본당'을 자처한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와 'DJP 연합'을 이룬데서 절정을 이뤘다. 재임시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관을 건립하는 데 앞장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를 두고 "정치공학과 야합에 능하다"는 비판도 있었다. '제왕적 1인 보스' '밀실·패거리 정치문화를 심화시켰다'는 지적도 받았다. 전략·전술이 풍부하고 조직과 자금을 동원하는데도 탁월했다. 그러나 의도적이었는지는 몰라도 '후계자'를 만들지는 않았다.

정치력의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에서는 논리정연하고 호소력 짙은 화술이 그의 강력한 무기였다. DJ가 1964년 당시 동료 김준연 의원에 대한 여당의 구속동의안 표결을 저지하기 위해 국회 본회의에서 5시간30여분간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연설을 해 결국 표결을 무산시킨 일화는 유명하다. 약간 쉰 듯한 목소리에 입을 크게 벌리지 않고 맺고 끊음이 분명하게 말하면서, 강조할 부분에서는 칼로 도마를 내려치듯 손날을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이 연설의 특징이었다. 유머도 풍부했다.

강철 같은 체력도 강점이었다. 하루 300리 이상 움직이면서 1회에 한시간씩 10여회씩 강연을 했다. 보통사람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강행군이었다.

현실의 난관을 뚫고 줄기차게 자신의 목표를 위해 매진하는 저돌적인 면모도 엿볼 수 있었다. 다섯차례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권력과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길을 걸은 것도, 70대 노정객으로 '3전4기'의 신화를 일궈낸 것도 바로 그의 끊임 없는 응전정신에서 비롯됐다.

광범위한 해외 인맥은 DJ가 역대 대통령과 가장 뚜렷하게 구별되는 부분이다.

1972년, 82년 두 차례에 걸친 일본·미국 망명생활과 14대 대선 실패 후 영국 체류(93년) 과정에서 만들어진 유럽계 인맥, 그리고 94년 아태평화재단 설립과 함께 만들어진 아태민주지도자회의 그룹 등이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과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 리처드 게파트 전 민주당 원내총무 등이 가까이 지내는 미국측 인사였다. 세계적 투자가인 조지 소로스는 아태재단 행사에 후원금을 보낼 정도로 대표적인 친DJ 인사다. 통일 독일 초대 대통령 바이체커와 프랑스의 미테랑 전 대통령, 스웨덴의 팔메 전 총리 등과도 가까운 사이였다. 코라손 아키노 전 필리핀 대통령, 라지브 간디 전 인도 총리 부인인 소냐 간디, 데스먼드 투투 남아공 그리스정교 대주교 등은 민주화·인권운동의 동지 관계를 맺고 있다.

유명한 일화도 있다. 필리핀 민주화의 영웅 고 비니그노 아키노 상원의원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가장 아끼던 타자기를 DJ에게 전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83년 그가 암살된 뒤 그 타자기는 DJ에게 전해졌다. 넬슨 만델라 남아공 대통령은 97년 5월 DJ가 새정치국민회의 전당대회에서 대선 후보로 선출되자 평생 간직해온 손목시계를 선물했을 정도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
신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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