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前 대통령 주치의 “공허하고 아쉽다”

김 前 대통령 주치의 “공허하고 아쉽다”

기사승인 2009-08-19 19:40:00

[쿠키 사회]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주치의인 정남식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공허하고 아쉽다”고 했다.

“아침에 출근하니 ‘오늘은 뭘해야 되나’ 멍한 기분이 들었어요. 아침 일찍 빈소에 가서 조문하고 이희호 여사를 만났는데 차분하고 의연한 모습이었어요. 늘 그랬듯이 ‘성의껏 치료해 줘서 너무 고맙다’고 했고요.” 연세대 의과대학 학장실에서 19일 만난 정 교수는 담담하게 김 전 대통령을 추억했다.

정 교수는 김 전 대통령 취임 직후인 1998년부터 임종까지 함께 한 ‘대통령의 의사’였다. 12년 동안 심장 치료를 전담했고 37일의 투병 기간에는 의료진 13명을 이끌었다. 김 전 대통령의 사망을 최종 확인한 의사도 정 교수였다. “편안한 표정이었어요. 사망을 확인하고 나니 슬프고 눈물이 나 다른 방에 가 있었어요. 가족들은 소생이 어렵겠다는 말에도 마음의 준비를 했는지 담담히 받아들였고, 이 여사는 계속 기도했습니다.”

정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이 투병 기간 동안 인공호흡기 부착을 매우 힘들어 했다고 전했다. “지난달 19일 인공호흡기를 잠시 뗐을 때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했는데 ‘살려줘서 감사합니다’라는 뉘앙스가 아니라 ‘갑갑하던 호흡기를 떼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들렸습니다.” 김 전 대통령이 이후에도 별다른 말이 없었고 “최선을 다하겠다”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하는 걸로 의사를 표시했다.

정 교수의 기억 속 김 전 대통령은 인정 많은 어른이었다. 투석 때문에 동교동을 방문하면 눈빛에 반가움이 역력했다고 했다. “지난해 8월에 의대 학장에 취임하고 투석하러 가니까 ‘바쁜 데 왔다, 학장이면 바쁠 텐데 얼른 가라’고 했어요. 하고 싶은 말도 많았을 텐데 그렇게 배려해 주었어요.” 정교수는 또 “김 전 대통령은 과거를 회상하며 ‘내가 많은 핍박을 받았는데 남을 핍박하겠느냐’ ‘물에 빠져도 죽고 교통사고로도 죽는데 민주주의를 위해서 죽는다면 영광 아니냐’ 등의 말도 했다”고 전했다.

정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뛰어난 기억력을 보여주는 일화도 소개했다. “혈액 투석 중 ‘몇달 전 빈혈수치가 ○○였지?’라고 말하면 정확히 일치했어요. 80세가 넘은 고령인데….” 김 전 대통령은 투석 도중에도 중국의 인구가 많은 이유와 경제 대국이 된 이유를 정 교수에게 들려줬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출판 기념회에 참석할 때는 책 내용을 자유자재로 인용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정 교수는 마지막으로 김 전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을 몇 장 보여주며 김 전 대통령을 떠올렸다. “해외에 갈 때, 누울 수 있는 비행기 좌석이었는데도 눕지 않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신문이나 책을 읽는 분이었어요.” 국민일보 쿠키뉴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
임성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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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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