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DJ’ 국민들 곳곳에서 애도…이희호 여사 “행동하는 양심이 남편의 유지”

‘굿바이 DJ’ 국민들 곳곳에서 애도…이희호 여사 “행동하는 양심이 남편의 유지”

기사승인 2009-08-23 21:53:00


[쿠키 사회]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남북화해와 평화통일, 동서화합과 상생의 염원을 유지(遺旨)로 남기고 사랑하는 국민들 곁을 떠났다. 국민들은 국회 주변에서, 동교동 사저 근처에서, 서울광장에서, 연도에서, 그리고 TV를 통해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보면서 고인을 애도했다.

◇손자의 눈물=50년 가까이 살았던 집을 마지막으로 둘러본 시간은 채 20분이 되지 않았다. 김 전 대통령의 영정은 23일 오후 3시48분 동교동 사저에 도착했다. 손자 김종대(23)씨의 두 손에 들린 영정 속 눈의 시선은 손때 묻은 책과 의자 등 유품들로 향했다.

손자는 장례 기간 참았던 눈물을 끝내 할아버지 침실에서 터뜨렸다. 김 전 대통령 침대 옆 의자에 2∼3초간 영정을 놓아둔 뒤였다. 손자가 할아버지에게서 인생 교훈을 들은 것도 이 자리였을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일기에서 "손자 종대에게 이웃사랑이 믿음과 인생살이의 핵심인 것을 강조했다"고 썼다.

영정은 고인이 평소 즐겨 앉던 사저 2층 서재 의자와 1층 거실 소파,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5층 집무실 의자에 한차례씩 더 놓여졌다. 처음으로 공개된 서재는 전직 대통령의 것치고는 협소했다. 16㎡ 남짓한 공간에는 책상과 책꽂이, 신장 투석을 위한 간이 침대가 빽빽하게 자리해 있었다.

책상 가운데는 7월10일 9시46분에 작성된 '주간 일정표(7.11∼25)'가 놓여있었다. 일정표에는 주한유럽연합상공회의소 연설, 세브란스 안과 등 일정이 적혀 있었다. 고인이 병원 입원 직전까지 읽던 '조선왕조실록' '제국의 미래' '오바마 2.0' 책이 책상 위에서 영정을 맞았다. 책상에서 2m 가량 떨어진 책꽂이에는 500여권의 책이 꽂혀 있었다.

서재 벽 한쪽에는 백범 김구 선생의 친필 휘호인 '윤집궐중'(允執厥中·진실로 그 가운데를 취하라)이 걸려 있었다. 영정은 거실과 식당, 2층 침실, 서재를 거쳐 연세대 김대중 도서관 1층 전시실, 2층 자료실, 5층 집무실을 차례로 지났다. 영정은 오후 4시5분 영원한 안식을 향해 집을 떠났다.

1961년부터 살아온 집이었다. 이희호 여사는 차마 영정을 뒤따르지 못하고 정원에서 눈물만 흘렸다. 사저를 지켜온 경찰관들은 정복을 차려입고 마지막 경례를 했다. 김 전 대통령이 평소 다니던 서울 서교동성당의 성가대는 쉬지 않고 추모곡을 불렀다. 안숙선 명창은 이 여사가 고인에게 쓴 편지 내용, "이제 하나님께서 당신을 뜨거운 사랑의 품 안에 편히 쉬시게 하실 것입니다"를 창으로 불렀다.

운구 행렬은 앞서 국회 영결식장을 떠나 오후 3시36분쯤 여의도 민주당 당사로 들어가는 골목 앞에서 멈췄다. 이 여사는 민주당 정세균 대표에게 "의원들과 당원에게 감사한다는 말을 꼭 전해주세요"라고 했다. 민주당 의원·당직자들은 "여사님, 힘내세요"를 수차례 반복해서 외쳤다. 국회 앞에서는 시민 3000여명이 대형 전광판으로 영결식을 지켜봤다.

◇아내의 당부=운구행렬은 오후 4시24분쯤 서울광장에 도착했다. 이 여사는 1만7000여명(경찰 추산)이 모인 광장 한가운데서 마이크를 잡았다. 고인을 대통령이라 부르지 않고 "제 남편"으로 불렀다. 자랑스러운 남편을 둔 아내의 모습이었다.

이 여사는 떨리면서도 힘 있는 목소리로 "남편이 추구한 화해와 용서의 정신, 평화와 어려운 이웃을 사랑하는 행동의 양심으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원한다. 이것이 남편의 유지"라고 말했다. 또 "남편은 일생을 통해 민주주의를 지키려고 피나는 고통을 겪었다. 많은 오해를 받으면서도 오로지 인권과 남북의 화해, 협력을 위해 노력해 왔다"고 했다. 이어 "남편이 병원에 입원했을 때와 국장 기간에 넘치는 사랑을 베풀어주신 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 드린다"고 했다.

이 여사가 말을 마치고 나자 김 전 대통령이 애송하던 노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광장에 낮게 울려퍼졌다. 시민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는 동안 '김대중 대통령이여, 민주주의여'라고 적힌 노란 풍선 수백여개가 하늘로 올라갔다. 이곳저곳에서 유족을 향해 "힘내세요"라는 외침이 들렸다.

운구행렬은 오후 4시37분쯤 서울역을 지나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으로 향했다. 서울역에서 김정태(38·서울 독산동)씨는 "고향에 내려가 있는 동안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들었는데 실감이 안 났다. 실려가는 영정사진을 보니 마음 한구석이 휑하다"고 말했다.

◇고인의 영면=운구 행렬은 오후 5시쯤 국립서울현충원에 도착했다. 안장식에는 김 전 대통령의 큰아들 홍일씨도 참석해 이 여사 옆에 자리했다. 홍일씨는 건강상 이유로 주변에서 영결식 참석만 권했으나 본인이 아버지 가는 길을 끝까지 따르겠다고 했다.

안장식은 오후 5시12분 3군 의장대에 의해 김 전 대통령의 시신이 안치된 관이 묘역 앞에 이르면서 시작됐다. 4대 종교 의식이 끝나고 하관을 앞두자 이 여사의 슬픔이 극에 달했다. 이 여사는 턱을 떨며 울음을 참았고, 막내 아들 홍걸씨는 어깨를 주무르며 "울지 마세요"라고 위로했다.

홍걸씨도 오후 6시5분부터 시작된 하관 장면에서 울음을 참지 못했다. 관 위를 덮었던 대형 태극기가 벗겨지고 향나무 관이 의장대 10명에 의해 땅에 묻히자 이곳저곳에서 오열하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하관 뒤 삽으로 흙을 퍼서 뿌리는 허토 의식이 시작되자 일부 비서진은 "대통령님 사랑합니다"라고 외쳤고, 김옥두 전 의원 등 생전의 동지이자 측근들도 소리내 울었다. 허토 때 쓰인 흙은 고인의 고향인 전남 신안군 하의도 생가터에서 가져왔다.

◇지방에서도 슬픔=김 전 대통령의 고향인 신안군 하의도 주민과 조문객 200여명은 하의면사무소 앞마당에서 대형 모니터로 영결식을 지켜보며 고인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주민들은 김 전 대통령의 생전 영상이 방송되자 눈시울을 붉히며 슬퍼했다.

전국 각지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영결식이 끝난 뒤에도 밤늦게까지 조문객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권기석 서윤경 임성수 기자
keys@kmib.co.kr
권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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