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서울 종로 바닥을 주름잡는 노인들이 있다. 대한민국어버이연합회(어버이연합), 나라사랑노인회, 21세기노인연합회, 홍익인간노인회, 아사달노인회. 이름만 들어도 성성한 백발과 나무 지팡이가 떠오르는 이들 노인단체는 훈정동 종묘공원과 종로2가 탑골공원에 저마다 거점을 두고 있다.
27일 서울 혜화경찰서와 종로구청 등에 따르면 이들은 제각각 정치색을 띤 집회를 열면서 안팎으로 보이지 않는 세력 다툼을 벌이고 있다. 정치 성향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모였다 갈라서기를 반복하며 우리 사회에서 자신이 설 자리를 찾는 것이라고 노인들은 말했다. 이런 ‘은발의 리그’가 한국 정치의 축소판이라는 해석과 정치적 동원이라는 지적이 함께 제기되고 있다.
노익장을 가장 먼저 과시한 단체는 지난 2006년 봄 결성된 어버이연합이다. 탑골공원에서 종묘공원으로 옮겨 온 이들은 거의 매일 오후 1시 시계탑 옆 공터에서 ‘국가와 민족을 위한 안보 토론회’라는 집회를 연다. 지난 25일 만난 이철성(81) 대표는 “우린 우파 단체야. 좌파 척결이 목적이지. 여기 나온 사람들 전부 애국자야”라고 말했다. 이들은 다음날 공원 안쪽 건강체조교실 앞 공터에서 인공기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진을 불태우며 “김정일 타도”를 외쳤다.
어버이연합은 이미 한 차례 세포 분열을 겪었다. 200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후보 경선 과정에서 박근혜 지지층과 이명박 지지층으로 갈렸다.
모임에 끼지 못한 조모씨는 자기 사람들을 모아 나라사랑노인회를 결성했다. 이 단체는 지난해부터 이상재 동상 앞에서 ‘안보좌담회’을 열었지만 얼마 못 가 다시 내분에 휩싸이고 말았다. 강연 내용의 정치색이 한쪽으로 치우친다며 노인들끼리 싸웠다.
다른 사람에게 회장 자리를 물려준 조씨는 다른 사람들을 이끌고 나와 21세기노인연합회를 만들었다. 이미 노인들로 가득찬 공원은 그리 넉넉하지 않았다. 한 장소를 나눠 써야 하는 나라사랑노인회와 21세기노인연합회는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해 어느 쪽도 집회를 열지 못하는 처지에 놓였다. 회원들은 서서히 흩어졌다. 공원을 즐겨 찾는 노인들 사이에선 두 단체가 해체됐다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다.
어버이연합 계열과 전혀 다른 진보 성향을 띤 홍익인간노인회는 지난해 6월 한모씨가 결성했다. 평소 종묘공원을 즐겨 찾던 한씨는 어버이연합과 나라사랑노인회가 마이크·스피커를 동원해 집회를 열어 소란스럽다며 종로구청에 진정을 내기도 했다.
구청이 별 대응을 못하자 그는 뜻이 맞는 노인들을 모아 일종의 맞수 단체를 만들었다. 이들은 공원 화장실 옆 공터와 탑골공원에서 반 정부 사진 전시회를 열거나 관련 선전물을 배포했다. 촛불집회나 언론노조집회 등에도 참가했다.
이 단체도 지난해 말 패가 갈렸다. 회비 사용 내역을 놓고 불만을 품은 노인들이 떨어져 나와 아사달노인회를 만들었다. 화장실 옆 공터는 아사달노인회가 차지했다. 홍익인간노인회는 탑골공원으로 갔다. 두 단체는 현재 재통합을 위해 내부 의견을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글·사진=국민일보 쿠키뉴스 강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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