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정치] 신종플루 백신 및 치료제 부족 사태에는 연말연초 이후 파행을 거듭해온 국회도 크게 한 몫한 것으로 드러났다. 1차적 책임은 제때 약품을 구비하지 못한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에 있지만, 4년 전부터 지적돼 온 법 정비를 게을리한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의 책임도 무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31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보건복지가족부는 지난해 12월31일 전염병예방법 전부개정안을 발의했다. 법안은 전염병이란 명칭을 세계보건기구(WHO) 용례에 맞게 감염병으로 바꾸고, 복지부 장관에게 신종 감염병에 대한 예방 및 치료 의약품 및 장비의 품목을 정하여 비축하거나 장기구매 계약을 체결하는 권한을 부여했다. 또 병의 대유행이 우려되면 즉각 의약품 제조업자에게 생산을 명령하는 권한까지 규정했다.
특히 법안 42조는 전파 속도가 빠른 신종인플루엔자와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등을 강제처분 대상에 포함시켜 WHO의 권고에 따라 즉각 정부가 확산 방지와 감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국회 복지위는 법안 제출후 7개월이 지난 7월6일에야 다른 개정안과 함께 뒤늦게 상임위 전체회의에 법안을 일괄 상정했다. 게다가 여야간 미디어법 대치 등으로 민주당 등이 불참했고, 전체회의는 법안만 상정한 채 42분 만에 끝났다. 복지위는 이후에도 법안을 소위에 넘기는 등의 심의를 전혀 진행하지 못했다. 관련법을 미리 개정했다면 뒤늦게 이종구 질병관리본부장이 백신 및 치료제 추가 확보를 위해 해외를 순방하는 촌극을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이같은 법 정비는 참여정부 시절인 2005년 지금의 신종 플루와 유사한 전염병(38도 이상 발열, 호흡기로 감염)의 대유행에 대비해 전국 규모의 위기관리 시뮬레이션 훈련 후 첫 순위로 지적된 사항이다. 당시 정부는 지금의 개정안과 유사한 법안을 2007년 11월 국회에 제출했으나 당시에도 대선 일정에 밀려 논의를 진행하지 못했고 법안은 17대 국회 임기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복지위 변웅전 위원장은 “오는 3일 복지위 전체회의를 열고 신종 플루와 관련된 백신과 치료제, 법안 정비 문제를 우선적으로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야 갈등으로 시급한 민생 법안을 논의 조차 못했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다. 복지위 관계자는 “국민 건강권보다 직능 단체 이권에 더 민감한 국회 복지위의 인적 구성과, 질병 대책보다 의료 산업화 법정비를 우선한 복지부 등이 만들어 낸 일”이라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우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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