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어디에 있나요?” “그게 저 …. 참, 답답하고 면목이 없어서 말이죠. 그냥 서울 모처에 잠시 보관 중이라고 해주시면 안 될까요.”
최근 중국 하얼빈에서 서울로 옮겨 온 안중근 의사 동상(본보 8월12일자 1면 보도)의 행방을 묻자 안중근평화재단 청년아카데미 정광일(49) 대표는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청년아카데미는 동상을 효창공원에 있는 안 의사의 가묘 옆 사당에 49일간 보관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용산구가 허가하지 않아 공원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3일 오전 10시30분쯤 공원에서 승용차로 15분 정도 걸리는 흑석동 원음방송국 현관 앞. 길이 3.3m, 폭·높이 각 1.2m 크기의 나무 상자가 바람에 실려 오는 흙먼지를 그대로 뒤집어쓰고 있었다. 처마 아래서 간신히 햇볕을 피한 상자는 무궁화가 새겨진 천으로 덮여 있을 뿐이었다. 생뚱맞기도, 쓸쓸해 보이기도 했다.
방송국 주차 관리인은 “2일 아침에 출근하니까 저 상자가 떡 하니 들어와 있더라. 안 의사 동상이 들어 있는 상자라는데 찾아 오는 사람은 없었다”고 했다. 청년아카데미는 안 의사가 천주교 신자였던 점을 고려해 인근 성당에 두는 방안도 생각했지만 마땅한 곳을 찾지 못했다. 동상은 언제 어디로 또 옮겨질지 모른다.
2006년 중국 하얼빈에서 설치된 지 11일 만에 철거되는 수모를 겪은 안 의사 동상이 고국에서도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나무 상자에 갇혀 빛을 보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앞으로 햇볕을 제대로 볼지도 알 수 없다. 어디에 세워질지는 불투명하다. 동상을 국내로 옮긴 청년아카데미는 안 의사 의거 100주년 기념일인 다음달 26일 공공 장소에 설치하고 제막식을 열 계획이었다.
국가보훈처를 비롯한 정부 기관은 동상을 서울 시내에 세우는 데 신중한 입장이다. 오경준 보훈처 국립묘지정책과장는 “기본적으로 바람직한 일이지만 공공 장소에 설치하려면 관련 단체나 유족과 사전 협의를 거쳐야 한다. 안 그러면 나중에 불필요한 논란이나 갈등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동상 설치 문제를 함께 논의할 단체는 함세웅 신부가 이사장으로 있는 안중근기념사업회와 안중근의사기념관을 운영하는 안중근숭모회다. 두 단체의 입장은 엇갈린다. 기념사업회는 청년아카데미 측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힌 반면 숭모회는 해당 동상의 예술적 가치가 빈약하다며 등을 돌렸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강창욱 기자,사진=이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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