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의 과감한 실험… 학생 손으로 만든 교양강의 국내 첫 도입

경희대의 과감한 실험… 학생 손으로 만든 교양강의 국내 첫 도입

기사승인 2009-09-16 17:32:01

[쿠키 사회]“얼마 전에 서대문형무소에 갔는데 한 엄마가 초등학생 아들한테 물어요. ‘우리나라가 왜 식민지가 됐는지 아니?’ 모른다고 하니까 엄마가 그래요. ‘힘이 없어서 그랬어. 그러니까 우리나라를 강하게 만들려면 네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해.’ 이게 바로 뭐예요? 애국계몽운동이죠.” 생각지 못한 결론에 학생들은 웃음보를 터뜨렸다.

15일 오후 서울 회기동 경희대학교의 한 강의실. 마이크와 분필을 양손에 쥔 김행선(55·여) 강사는 지루할 법도 한 역사 강의를 특유의 재치와 시원시원한 어조로 살려냈다. 수강생 35명은 김 강사가 글자를 써내려가는 칠판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이 수업은 개설 배경부터 여느 강의와 달랐다.

경희대는 이번 학기 시작에 맞춰 학생들이 직접 기획한 교양과목 5개 강좌를 개설했다. 주제 선정부터 강사 섭외까지 학생들이 도맡았다. 학교 측은 ‘배움학점제’를 도입해 학생들이 배우고 싶은 강의를 스스로 만들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했다. 국내에서 처음 있는 시도다. 대학가에서는 파격으로 받아들여진다.

강의 초점은 학생의 요구에 따라 현장과 실생활에 맞춰졌다. 김 강사의 ‘발로 배우는 한국 근현대사’에서는 서대문형무소, 우정국, 운현궁, 전쟁기념관, 4·19묘지를 찾아간다. 김남시(39) 강사는 ‘예술, 세상을 바꾸다’에서 미술관 작품을 벗어나 젊은 작가들이 거리에서 벌이는 다양한 예술을 소개할 예정이다.

이병주(37) 강사가 가르치는 ‘미디어 비판, 비판의 미디어’는 대안 미디어에 주목한다. 이 강사는 “기존 미디어의 공신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학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미디어는 무엇인지 함께 고민할 것”이라고 했다. ‘다시 보는 마르크스주의’ ‘영상으로 읽는 세계경제사’는 복잡한 이론을 사례 중심으로 풀어 간다.

이들 강의는 학점에 연연하지 않고 정말 원하는 걸 배워 보자는 취지로 신설됐다. 모든 강의가 수강 신청 첫날 접수가 마감됐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총학생회 김한정희(26·여) 교육과정심의위원장은 “대학가 관심이 취업에 쏠리면서 교양 강의마저 실업 교육이나 학점 획득 수단으로 변질돼 아쉽다는 지적이 있었다”고 했다.

새 강의는 학생을 학점으로 평가하지 않고 통과 여부만 가린다. 학교 측은 학습 동기가 떨어지지 않겠느냐고 염려했었다. 학생들은 엄격한 평가 기준을 만들고 강의마다 모니터 요원을 투입해 수업이 느슨해지지 않도록 점검하겠다고 약속했다. 양측은 4개월간 격론을 벌인 끝에 지난 5월 접점을 찾았다.

경희대는 첫 학기 운영 성과에 따라 이런 강좌를 10개 미만 수준에서 더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김상준 교양학부장은 “그동안 학교에서 개설한 강좌는 교수 눈높이에서 수업이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교수들도 이번 시도가 성공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강창욱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