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문화] 김명민은 참 대단한 배우다. 영화 ‘내사랑 내곁에’에서 루게릭병 환자 종우 역을 맡기 위해 3개월간 20㎏을 감량했다. 촬영기간 내내 오늘은 어제보다 0.3㎏이라도 줄어있어야 했다. 3개월간 밥을 입에도 대지 않으며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렸다.
그가 대단한 배우인 이유는 단순히 역할을 위해 몸무게를 감량했다는 데 있는게 아니다. 몸이 자신의 한계와 벌이는 사투를 뛰어넘어 그는 배역에 몰입했다. 육체적으로 지치면 집중도 되지 않는 법. 하지만 그는 혼절을 거듭할 정도로 체력이 떨어져있는 상황에서도 루게릭병을 앓는 ‘백종우’가 되기 위한 집중을 놓치지 않았다.
‘너는 내 운명’ ‘그 놈 목소리’를 연출한 박진표 감독은 전작에서 보여준 사랑과 불치병이라는 소재를 구차하지 않게 다룰 줄 아는 솜씨를 이번 작품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했다.
눈물 흘릴 것을 각오하고 영화를 선택한 관객이라면 섭섭할 정도로 영화는 눈물을 강요하지 않는다. 영화는 그저 상황이 좋지않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사랑 이야기를 담담하게 전개한다. 그럼에도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봐야 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곁에서 고통받는 것을 봐야 하는 사람의 슬픔은 관객의 마음을 적신다.
루게릭병에 걸린 종우는 하나뿐인 혈육인 어머니를 잃는다. 그리고 장례식장에서 장례 지도사 지수(하지원)를 만난다.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찾아온 여자다. 지수는 직업 때문에 두 번 이혼한 경험이 있다. 지수는 시체닦는 손이라며 혐오감을 자아냈던 자신의 손을 ‘세상에서 가장 예쁜 손’이라고 불러주는 종우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종우의 신체는 차츰 기능을 잃어간다. 병세가 심해지며 점점 지수의 도움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 종우. 그에겐 “사랑하니까 보낸다”는 말이 상투적일 수 없다. 아무리 귀찮고 힘들어도 좋으니 살아서 곁에만 있어달라는 지수에게 “사랑하니까 보낼 수 없다”는 말은 어설픈 객기가 아닌 참된 진실이다.
영화는 종우가 머무는 6인 병실의 풍경을 보여주며 이야기의 외연을 확대한다. 6인 병실을 통해 영화는 단지 남녀만의 사랑이 아닌 더 넓은 가족애와 인간애를 풀어낸다. 끝내 일어나지 못하는 남편의 뺨을 연거푸 때리는 할머니(남능미)의 이야기는 투병자 가족이 겪는 희망과 절망의 애끓는 반복을 잘 표현했다.
잘 만들어진 영화임에 틀림없지만 묘한 아쉬움이 생긴다. 연출이 너무 매끈해서다.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병이라는 루게릭병 환자와 그 가족의 고통은 매끈할 수 없다. 영화적 연출을 떠나 그들의 인간적 고뇌를 더 깊이 담고자 했다면 이 영화는 오히려 좀 더 질척거렸어야 하지 않을까. 국민일보 쿠키뉴스 양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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