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R&D지원사업 도대체 어떻기에…

정부 R&D지원사업 도대체 어떻기에…

기사승인 2009-09-21 22: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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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경제] 국립대 교수였던 K씨는 4년 전 코스닥 기업인 A사로부터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치매 치료와 관련된 정부의 신약 연구·개발(R&D) 과제가 있는데, 과제 수행 업체로 선정되게끔 힘을 써주면 2억원을 사례하겠다는 조건이었다. 당시 연구과제 규모는 120억원대였다. K씨는 이 연구용역에 관여했던 한국과학재단 전문위원이었다.

A사 관계자는 K씨와 함께 과학기술부 전 국장 K씨에게도 2억원을 건넸다. A사는 R&D 용역을 잇따라 수주했지만 결국 범행 일체가 들통났고, K씨 등은 지난 5월 쇠고랑을 찼다.

정부 R&D 지원금을 둘러싼 정부-대학(또는 연구소)-기업간 비리 구조의 전형적인 사례로 꼽힌다.

최경환 지식경제부 신임 장관은 21일 취임식에서 "R&D자금 지원 체계를 확 바꾸겠다"고 공언했다. 최 장관은 "밖에서는 (R&D에 대해) '깨진 독처럼 아무리 부어도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라며 "이에 대한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경부에 따르면 올해 정부의 R&D예산은 12조3000억원으로 GDP의 3.5%를 차지하고 있다. 지경부 자체적으로는 4조원 정도이며, 내년 예산은 올해보다 10.5% 증액될 정도로 점점 비중이 높아지는 예산 분야다.


하지만 정부 R&D 과제 선정부터 진행, 평가·관리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걸쳐 빨간불이 켜졌다는게 업계와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벤처기업이 몰려 있는 서울 구로디지털단지에서는 수년 전부터 일명 'RD 브로커'들이 업체들을 누비고 다닌다. R&D 자금을 타내기 위한 수행과제 제안서를 대신 써주고 컨설팅해주는 '꾼'들이다.

경기도 안산에서 벤처기업을 운영하는 김모(45) 사장은 "벤처 기업 10곳 중에 7곳 정도는 자체적인 사업 개발보다는 정부 과제 수행으로 먹고 사는 현실"이라며 "이런 기업들을 타깃으로 한 RD브로커들은 일감이 그치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이들 브로커는 과제가 선정되면 지원금의 10∼30%에 달하는 수수료, 혹은 관련 지분까지 나눠 갖기도 한다.


과제 선정 과정에 공무원이 끼어드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지난 4월말에는 보건복지가족부 소속 사무관이 R&D 과제 수행 업체를 선정하는데 불공정하게 개입했다가 공무원 임용이 취소되기도 했다. 이 사무관은 150억원이 넘는 사업 기획을 평소 아는 사람에게 의뢰했다가 발각됐다.


과제수행 단계에서도 혈세가 새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7월 경남 창원의 반도체 장비 업체는 R&D지원금으로 2∼3년동안 수억원을 받았지만, 정작 신제품 개발에는 한 푼도 쓰지 않다가 과제비 전액을 몰수당했다. 정부에서 지원금 전용을 막기 위해 현금 대신 '체크카드' 형식으로 지원금을 지원하기도 하지만 이중 결제 등의 방법으로 암암리에 전용이 이뤄지고 있는 현실이다.

정부도 심각한 상황을 인식하고 팔을 걷는 분위기다. 감사원은 오는 11월 산업기술 및 정보통신, 건설·교통, 에너지·환경 등 국가 R&D사업 전반에 대한 관리체계와 운영실태에 대한 감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지경부 관계자는 "조만간 R&D 지원체제 전반에 걸쳐 개선책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박재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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