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가 쓴 ‘박경리론’… 모심의 문학 규정

김지하가 쓴 ‘박경리론’… 모심의 문학 규정

기사승인 2009-09-28 18:01:01
[쿠키 문화] 김지하(68) 시인이 ‘박경리론’을 발표했다. 28일 배포된 문예지 ‘문학의 문학’ 가을호에 실린 김 시인의 글 ‘흰그늘과 화엄-박경리 문학과 네오르네상스를 생각한다’는 박경리 선생의 대표작인 ‘토지’ 완간 15주년에 즈음한 지난 8월15일에 맞춰 집필된 것으로, 시인이 쓴 소설가론이라는 점에서뿐만 아니라 사위가 쓴 평문이라는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좌파도 우파도 못마땅해 한 바로 그 지점. 여류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그 무수한 자칭 페미니스트들이 가장 못마땅한 여류 작가로, 반(反)여성 해방적이라고 매도했던 박경리 문학의 그 한계라는 것 안에 도대체 무엇이 잠자고 있었던가?”

‘시장과 전장’ ‘김약국의 딸들’ ‘토지’ 등의 소설을 살피면서 전개한 김 시인의 박경리론은 여기서 출발한다. 그는 원고지 400매 분량의 글에서 박경리 문학을 ‘모심’의 문학으로 규정하고, 박경리 소설에서 드러나는 여성성 혹은 모성에 주목한다. 그것은 서구식 여성평등주의와는 구별되는 변혁적 에너지를 품고 있다는 것. 그는 박경리 문학을 “여성의 진정한 살림과 깨침의 세계문화대혁명의 동아시아 문학 사상 첫 샘물”이라고 치켜세웠다.


김 시인은 또 “세 작품을 관통하는 한마디가 ‘흰그늘’”이라고 보았다. ‘흰그늘’은 빛과 어둠을 함께 포용하는 김지하식 개념으로, 일견 그의 문학적 본류가 장모인 박경리 문학과 맞닿아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박경리를 “아름다운 로맨티시즘과 비극성의 흰빛에 악센트를 두지 않고 더럽고 추잡함에도 불구하고 그 속된 하루하루의 생계와 생활의 질긴 지속에서 훨씬 더 눈부신 흰빛의 출처를 찾은 작가”라고 평가했다.

박경리의 대표작 ‘토지’에 대해서는 “문체만 아니라 일반적 대화 구조, 지문 일반과 구성 체계의 진행 로드맵 등 모든 방면에서 대체로 모험적이며 단절과 비움이 시도된다”면서 “비워버리는 것. 제3의 ‘진테제’를 빈터로 놓아 버리는 것. 이것이 박경리 ‘토지’의 문법이다”라고 분석했다.

문학평론가 백낙청 교수를 비판한 대목도 흥미롭다. 김 시인은 백 교수가 쓴 ‘시장과 전장’에 대한 서평 ‘피상적 기록에 그친 6·25 수난’(1965년 ‘신동아’에 발표)을 거론하면서 “영혼의 고통과 생존의 핍박 속에서 영그는 생명 미학의 근원적 범주인 ‘숭고’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기나 알았던 것인가?”라며 쓴소리를 내뱉는다.

김 시인의 비판은 백 교수를 넘어 진보문단 전체로 이어진다. “박경리의 ‘토지’는 남한의 자칭 최고위 진보 철학자, 좌파 미학자, 유론론 문예 이론가들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았을까? 그래서 실질적으로 당파적 문단으로부터는 ‘숙청’하려고 무진 애를 쓰는 동작들이 그 사이에 나에게 자주 느껴진 것 아닐까? 아닐까? 아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평문에 접한 소설가 황석영은 “요즈음 아픈 사람 지하는 스스로 장모의 넋을 불러 병을 묻는 것일까”라는 말로 최근 육두문자를
불사하며 각종 매체를 통해 어지러운 속내를 드러내고 있는 김지하의 안부를 물었다.

김 시인은 지난달 초, 아내인 김영주(63) 토지문화재단 이사장과 함께 경기도 일산 자택을 정리하고 박경리 문학의 본향이라할 강원도 원주의 한 아파트로 거처를 옮겼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김남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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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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