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중人터뷰] 한경선, 알고 보니 ‘중년돌’…유쾌한 언변·콧소리 애교·사차원 엉뚱 ‘삼박자’

[취중人터뷰] 한경선, 알고 보니 ‘중년돌’…유쾌한 언변·콧소리 애교·사차원 엉뚱 ‘삼박자’

기사승인 2010-10-05 15:47:01

"[쿠키 연예] 인터뷰이(interviewee) 중에는 한 번의 대면이 진한 아쉬움으로 남는 경우가 있다. 차근차근 쌓아올린 연기 경력이 상당한 경우 1시간 남짓한 대면이 찰나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거니와,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진심 어린 인터뷰를 한 경우 ‘연예인’이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서 다시 한 번 만나고 싶어지고 한다. 20여 년 동안 안방극장에서 서민의 희로애락을 연기로 녹여낸 ‘명품 배우’ 한경선(47)이 그러하다.

지난번 인터뷰([관련 기사] ‘자이언트’ 한경선 “월화극 1위요? 시청률에 목말라요”
)가 ‘배우 한경선’에 집중했다면 이번에는 ‘인간 한경선’을 만나고 싶었다. 격식 없는 인터뷰를 위해, 차 한 잔 마주한 카페가 아닌 담소를 나누기에 적합한 횟집으로 자리를 잡았다, 물론 소주도 함께. 서로에 대한 경계심을 풀고 소탈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자연스럽게 오가는 술잔이 빨라졌다. ‘슬슬’ 오르는 취기 속에 ‘취중진담’은 ‘술술’ 흘러나왔다.

일단 얘기는 ‘혼자’인 삶부터 시작됐다. 한경선은 40대 중반이지만 아직 미혼이다. “마흔이 넘도록 시집가지 않고 뭐했냐”는 지인들의 핀잔을 귀에 닳도록 들었지만 자식 된 도리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결혼 적령기를 넘겼고 지금까지 오게 됐단다. 한양대 재학 시절 마음에 쏙 드는 의대생을 소개팅으로 만나 느낌 좋은 데이트도 했었지만 “내가 시집 가버리면 우리 부모는 어쩌나. 내가 번 돈으로 호강하셔야지, 아무래도 친정이 돼버린 내 집에 잘하기는 쉽지 않을 거야” 생각하며 결혼에 대한 희망을 그 때 접었단다.

요즘 사고방식에서 보면 ‘답답’해 보이고, ‘황당’해 보일 수도 있겠으나 먹고 사는 게 지상과제였던 시절 비슷한 선택을 한 우리의 ‘언니’들은 적잖다. 한경선도 그 착한 우리들의 맏언니들 중에 하나다. 다만 장녀가 아닌 막내라는 것만 빼면 말이다. 그런 한경선을 힘들게 한 건 결혼이 아닌 ‘가족애’에서 삶의 보람을 찾은 선택이 아니었다. 한 남자에게 기댈 수 없는 현실이 쓸쓸하고 외롭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를 힘들게 한 것은 자신을 둘러싼 근거 없는 ‘소문’이었다. 얘기는 자연스레 여배우로서 겪어야 했던 소문으로 옮겨갔다.

한경선은 1남 2녀 중 막내다. 손등에 깊게 파인 아버지의 주름살이 익숙했던 늦둥이다. 37세에 자신을 낳은 어머니와 52세에 막둥이를 얻어 기뻐했던 아버지. 시간이 훌쩍 지나 꽃다운 스무 살이 되던 무렵에는 칠순을 훌쩍 넘긴 아버지와 환갑을 바라보는 어머니가 곁에 있었다. 1985년 KBS 공채 탤런트에 합격한 딸이 자랑스러워 방송국을 제 집 드나들 듯 했던 아버지. 그의 부친은 가세가 기울기 전 일본에서 대학을 나와 일본어에 유창했으며, 패션과 유행에 대해 민감한 멋쟁이였다. 어쩌면 세상살이 모르는 멋쟁이였기에 더욱 보호해 드리고 싶은 존재였다. 방송국으로 찾아온, 그런 애틋한 아버지를 마중이라도 나가면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이 뒤에서 수군거렸다. ‘일본 할아버지가 스폰서다’ ‘엄마가 하는 요정 손님이다’…정말 아닌 땐 굴뚝에서 연기가 나더란다.

“부모님이 늦은 나이에 절 낳으시고 고생이 많으셨어요. 아버지께서 제 대학 등록금을 어렵게 구해 69만7000원을 신문지에 돌돌 말아서 주셨을 때 정말 울컥 했습니다. 대부분의 자식이 부모가 고생하는 걸 보면 ‘커서 효도해야지’ 다짐하잖아요. 저도 그 등록금을 받으며 ‘내가 부모님의 마지막 희망이다. 내 욕심보다 부모님께 먼저 효도하자’ 이렇게 마음먹었어요. 저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시고, 키워주신 게 너무나 감사하더라고요. 그런데 동료들은 저를 이상한 눈초리로 보면서 ‘일본 할아버지와 산다’ ‘엄마가 요정을 운영한다’ 말도 안 되는 소문을 만들어내더라고요. 황당한 이야기에 속상하고 한숨이 났지만 해명할 데가 없었어요.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리라 여기며 살다보니 지금까지 왔네요.”

근거 없는 소문에 휘말릴 때마다 여배우의 삶에 대해 회의가 들기도 했지만, 마냥 연기가 좋았고 TV 나오는 모습에 기뻐하는 부모님을 위해 모든 것을 참았다. 뭐니 뭐니 해도 부모님 봉양을 가능하게 해주는 소중한 직업이니 말이다.

“제가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는 모습을 바라셨을 거예요. 하지만 전 부모님께 최선을 다하고 싶었어요. 부모님 세계일주 시켜드리고 이렇게 저렇게 하다 보니 이 나이가 되도록 통장에 잔고도 없지만 후회하지 않아요. 물질은 적지만 마음만은 넉넉하니까요. 돈이야 제가 또 열심히 해서 벌면 되잖아요(웃음). 아마도 신께서 ‘너희들 고생했으니 심청이 하나 보낸다’ 이런 심정으로 저를 세상에, 제 부모님께 보내주신 거라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해 부모님을 모시려 노력했네요.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최선을 다해 부모님을 섬겨서 행복합니다.”



성형에 대한 왜곡된 시선도 그를 힘들게 만들었다. 10년 전, 임플란트 하고 덧니를 뽑은 건데 “턱을 깎았다”는 얘기를 들어야 했다. 촬영 도중 얼굴을 부딪쳐 상처를 입었을 때에도 “또 성형했냐. 부작용 난 거 아니냐”며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을 견뎌야 했다.

“덧니를 빼고 치아 임플란트를 한 뒤로 발음이 부정확해졌어요. 배우인 사람으로서 제가 누구보다 더 속상한데, ‘틀니 했냐’ 모욕을 당할 때도 있었어요.”

약간 울먹이던 한경선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반달눈에 환한 미소를 애써 지으며 말한다. “제가 요즘 임플란트 하신다는 분들 뵈면 의학적으로 꼭 필요할 때만 하라고, 신중하라고 거듭 말해요. 저도 그 때 다른 치료 방법이 있었을 수도 있는데 예뻐질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쉽고 빠른 선택을 하게 했던 것 같거든요. 그 결과 저는 요즘 이가 좋지 않아 조금이라도 딱딱한 음식은 씹어 먹지 못할 지경이 됐어요. 어떤 음식이든 물컹거릴 정도로 몇 시간을 가열해서 익혀먹고요, 우유나 비타민제를 먹으면서 연명하는데 ‘턱 성형했냐’ 말씀하시는 분들 만나면 정말 마음이 미어집니다.”

참 안쓰러운 이야기인데 그녀가 하면 웃음이 절로 난다. 방송인 현영 뺨치는 콧소리에 10대 아이돌도 울고 갈 애교 섞인 말투로 “제가요, 밥인지 죽인지 (훌쩍) 모를 정도로 끓여야 먹을 수 (콧물 킁) 있는 이빨이, 어머 상스러워라, 치아가 됐거든요(콧물 한 번 풀고). 비타민제, 칼슘제를 한 주먹씩 (훌쩍) 집어서 벌컥벌컥 삼켜요. 그래야 잇몸이랑 이가 버텨 주거든요옹~” 하고 말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혼자 보기 아깝다’.

세대 차 큰 부모님과 살았기에 또래와는 다른 감성을 지닌 것도 웃음의 발원지다. ‘나 한경선 애비올시다’를 연신 외치던 노신사 아버지 흉내로부터, 남편 모르게 어린 경선을 데리고 강가로 놀러가 ‘취미 생활’을 즐겼던 어머니의 숨겨진 에피소드까지 그가 입을 뗄 때마다 술자리에는 박장대소가 터져 나왔다. 코미디가 절정에 달아올랐을 무렵에는 “아, 이건 토크쇼에 가서 해야 하니 비밀로 해주세요~”라며 이야기 농도를 조절하는 능청스러움도 발휘했다.

혼자 보기 아까운 ‘예능인’임을 간파한 이가 있었으니 신동엽과 이수근이 진행하는 SBS 심야토크쇼 ‘맛있는 초대’이다. 오는 8일 한경선의 출연분이 전파를 탄다. 유쾌한 언변에 애교 넘치는 콧소리, 사차원적 엉뚱함까지 예능 프로그램에 제격인 캐릭터이다. “토크쇼로 끝내지 말고 자주 얼굴을 보여 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쑥스러운 듯 웃음을 짓는다.

“이 나이에 무슨 오락 프로그램…. 나가서 웃길 수나 있을지 모르겠어요. 얼마 전에 ‘맛있는 초대’ 녹화를 했는데 무슨 말을 하고 왔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 걸요. 심히 염려스럽습니다(웃음). 저의 엉뚱함을 좋아해주시는 시청자가 있다면 조금은 즐거워하지 않으실까 생각은 하지만, 주책이라고 흉보시진 않을 런지 걱정이네요(웃음).”

주술 호응 명확한 유창한 말솜씨에 좌중을 들었다 놨다 하는 코믹 입담을 듣노라니 한경선의 숨겨진 ‘예능 재능’이 어디까지일지 궁금해진다. KBS 2TV 예능 프로그램 ‘해피투게더’에 출연해 ‘손병호 게임’을 창시한 배우 손병호, 트위터에서 맛깔 나는 글로 누리꾼의 주목을 받고 있는 중견배우 김갑수, MBC 예능 ‘세바퀴’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 코믹 본능으로 웃음을 주고 있는 임예진까지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력과 함께 재치 입담으로 주목받고 있는 ‘중년돌’. 한경선의 재기발랄함이 마음껏 펼쳐져, 점차 식상일로를 걷고 있는 대한민국 예능에 신선한 자극으로 작용할 날을 기대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은주 기자 kimej@kmib.co.kr"
김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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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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