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사회] "저는 SKY(서울대 연세대 고려대)를 나왔고, 나이는 30대 초반입니다. 현재 유명 외국계 컨설팅 회사에서 과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서울 강남 지역에 거주하고 있으며, 키는 176(㎝)이고 …."
불임 부부들이 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 카페 ‘아기 탄생’(cafe.naver.com/babynet.cafe)의 게시판에 지난 22일 올라온 글이다. 작성자는 불임 남성 대신 그의 아내에게 정자를 제공하겠다는 대리부 지원자다. 그는 자신의 신체와 성격, 학력, 직업은 물론 가족 배경까지 상세히 소개했다.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대리부 존재가 언급된 22일 이후 ‘대리부를 하고 싶다’는 글의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 쇄도하고 있다. ‘아기 탄생’의 게시판에 올라오는 대리부 지원자의 글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25일 본보 확인 결과 22~24일 3일간 대리부 지원 관련 게시물은 368건으로 국감 직전 3일(19~21일)간 24건의 15.3배였다. 지난달 21일부터 지난 21일까지 한 달간 올라온 35건의 10.5배다.
지원자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게시물 제목과 내용은 노골적으로 변하고 있다. 국감 전날인 21일까지 제목 대부분은 ‘대리부 지원합니다’였다. 22일부터 대리부 지원자들은 ‘키 181/몸무게 75/나이 29(만)/근육질 체격/상위권 4년제 졸업’ ‘183cm/77kg/31세/의사입니다’처럼 자신의 신상을 앞세운 제목으로 시선을 끌고 있다.
‘부산 대리부 가격 저렴 뒤끝 확실’ ‘(성관계 시) 상대방(불임 여성) 배려합니다’ 등 서비스 특징을 앞세우거나 ‘희망을 드리고 싶습니다’ ‘나 하나로 인해 누군가가 행복해진다면(정자공여합니다)’처럼 공익성을 부각해 불순한 의도가 없음을 내비치는 제목도 등장했다.
본문은 더 구체적이다. 서울 유명 의과대학을 졸업한 20대 의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대리부 지원자는 “어렸을 때부터 공부야 워낙 잘했다. 헬스를 꾸준히 하여 적당한 근육질 몸매”라며 “단점이라면 키(173㎝)가 크지 않은 것인데 집안 내력이라 어쩔 수 없었다”고 장단점을 적어 참고토록 했다.
큰아버지가 법무부 장관을 지냈다거나 자신이 배우 장동건을 닮았다고 소개하는 지원자도 있었다. 이들은 저마다 자신이 똑똑하고 잘생겼으며 튼튼하다는 점을 강조했고, 일부는 근육질인 상반신 알몸 사진을 첨부하기도 했다. 22일 이전까지 대리부 지원 글은 체격과 병력을 소개하는 정도였다.
지원자가 밝힌 학력은 고졸부터 대학원 재학생까지 폭넓으면서 서울대·연세대·고려대 재학 및 졸업자, 명문대 경영대학원생, 해외 유학파 등 고학력이 적지 않았다. 직업은 자동차 수리공, 대기업 직원, 소믈리에(와인 전문가), 의사 등으로 다양했다. 심지어 공무원과 고등학생도 끼어 있었다.
이들 소개가 사실이라면 대리부를 용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는 사람만 있다고 볼 수는 없다는 지적이다. 금전적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는 대리부 지원자도 다수다. 이들은 ‘순수하게 불임 부부를 돕고 싶은 마음에서 나섰다’고 설명하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이들이 간곡한 어조로 자신을 소개하거나 같은 글을 여러 번 올리는 것은 내심 바라는 게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범죄 전문가들은 불임 부부의 절박한 처지를 이용해 성관계를 노리는 대리부 지원자가 있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현재 대리부의 정자 제공 방식은 인공수정과 자연수정(성관계)을 가리지 않고 있다.
이웅혁 경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대리부 지원자가 하는 말의 진위를 검증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불임 부부를 속여 금전적 이익을 취하거나 성적 욕구를 채우려는 남성이 있을 수 있다”며 “은밀히 이뤄지는 정자 공여가 범죄 피해로 이어지지 않도록 관련 제도를 확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국민일보 쿠키뉴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