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Z 영화人] 김윤진 “모성애 연기…진짜 엄마 되면 달라질까요?”

[Ki-Z 영화人] 김윤진 “모성애 연기…진짜 엄마 되면 달라질까요?”

기사승인 2011-01-08 13:01:00

"[쿠키 연예] 한국영화계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받고 있는 영화 <쉬리>. 이 작품이 1998년 국내 스크린에 불고 온 파장은 실로 위력적이었다. 그 중에서 남파된 북한 공작원 역을 맡아 비극적 사랑을 보여준 배우 김윤진은 극중 캐릭터답게 비밀스럽고 묘한 매력을 뿜어내며 ‘스크린 샛별’로서 관객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이는 전초전에 불과했다. 이후 <예스터데이><밀애> 등에 출연하면서 존재 가치를 조금씩 알리더니 2004년 집중을 받게 된다. 바로 전 세계 210개국에 방송되는 미국 ABC 드라마 ‘로스트’ 시리즈에 합류하면서부터다. ‘로스트’에서 한국인 선 역을 맡아 세계가 주목하는 ‘월드스타’로 성장했다.

‘월드스타’라는 수식어가 붙여질 경우 본인이 의도했건 그렇지 않건 대체적으로 관객과 멀어지는 신비주의자가 되기 십상이다. ‘월드스타’라는 수식어에 가려져 작품 선정에도 고심을 꽤하게 되고, 국내보다는 국외 활동에 집중하면서 복귀하는 시간이 다소 걸린다.

하지만 김윤진은 영리한 방법을 택했다. ‘로스트’ 비시즌일 때마다 국내 스크린에 꾸준히 얼굴을 내민 것. <6월의 일기><세븐데이즈><하모니> 그리고 지난 5일 개봉한 <심장이 뛴다>까지 쉴 틈 없이 활동한 필모그래피를 봐도 알 수 있다. <심장이 뛴다>에서는 심장병을 앓는 딸을 둔 영어유치원 원장 ‘채연희’ 역으로 돌아왔다.

<세븐데이즈><하모니>에 이어 <심장이 뛴다>에서도 ‘모성애’를 드러내는 캐릭터를 선택해 “또 모성애 연기야?”라고 물을지 모른다. 세 작품 모두 ‘모성애’를 관통하는 캐릭터라는 점에서 김윤진의 연기 패턴이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김윤진도 캐릭터 중첩에 대해 어느 정도 수긍하면서도 “모두 다 다른 장르인데다 변화를 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고 설명했다.

“모성애 연기를 했으나, 이번에는 다른 색깔을 강조하는 캐릭터예요. 물론 아이를 끝까지 지키고 싶어 했던 <하모니>에 이어 곧바로 엄마 색깔이 강한 캐릭터를 선택하게 돼 연장선 같은 느낌을 받으실 거라고 생각해요. 저도 대본은 좋은데 엄마 역할이라고 해서 주춤했거든요. 하지만 세 작품 모두 장르가 달라요. <세븐데이즈>는 스릴러, <하모니>는 신파, <심장이 뛴다>는 드라마예요. 다 다른 장르인데다 캐릭터가 완전히 겹치는 게 아니라서 저만의 느낌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비슷한 캐릭터를 연속으로 한다는 오해 섞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김윤진이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된 것은 ‘의외성’이다. 얼핏 보면 스릴러처럼 다가오는데 안에는 드라마틱한 요소로 가득 차 있어서 호기심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윤재근 감독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100% 핸드 헬드 기법에 생동감 넘치는 화면을 생각하고 있었더라고요. 윤 감독이 강조한 것은 하나의 심장을 두고 격돌하는 두 남녀의 대결을 그렸지만 내면에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드라마틱한 요소이거든요. 영화 <21g>처럼 멀리서 두 사람의 움직임을 몰래 관찰하는 듯한 장면을 담담하게 그려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컸고요. 일반적 관점이 아닌 새로운 시도를 하게 돼 좋았어요.”



배우는 경험을 통해 캐릭터를 만들고 다지기도 한다. 김윤진도 경험이 가져다주는 풍부함이 연기를 풍성하게 만든다는데 동의했다. 지난해 서른여섯에 결혼식을 올린 김윤진은 엄마가 될 나이가 됐다. 김윤진은 ‘진짜 엄마’ 경험을 기다리고 있을까.

“음…. 가끔 ‘엄마가 된 다음에 모성애가 강한 역할을 하면 연기를 잘할 수 있을까’ 상상하기도 해요. 아니면 ‘경험했다는 사실에 자만해 캐릭터에 덜 몰입하게 될까’ 갖가지 생각을 해보죠. 아직까지 (출산 및 육아) 경험을 하지 않아서 저도 제 자신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해요. 모성애 연기는 상상을 통해서만 하고 있어 어렵긴 해요.”

캐릭터를 자신만의 스타일대로 새롭게 만드는 일은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연기 경력 15년 차의 김윤진이지만 이번 ‘연희’ 캐릭터는 어려웠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모든 것을 다 갖춘 안정적 삶을 살고 있던 ‘연희’가 자신보다 더 아꼈던 딸의 심장병에 판단력을 잃게 되고, 심장이식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녀로 변신하는 과정이 녹록치 않았단다. 기승전결의 구도처럼 캐릭터가 일정한 패턴과 시간 흐름에 따라 변하는 게 아니라 한순간에 감정이 집약되고 폭발해야 했기 때문.

“좀 어려운 캐릭터였어요. 단란한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는 행복한 모습을 보여줬다가 4분도 안 돼서 ‘따님이 심장이식을 받지 않으면 내일이라도 당장 죽을 수 있다. 빨리 결정을 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은 뒤 급격한 감정 변화를 겪거든요. 게다가 격한 감정을 드러내는 게 어느 정도 선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와야 하는지 계산이 되지 않았고요. 감독과 수시로 상의하면서 감정선을 조절했어요.”

김윤진을 괴롭힌 최대의 적이 있었으니, 바로 ‘치마’다. 눈썰미 좋은 관객이라면 ‘연희’는 늘 치마를 입고 나온다. 스크린 상으로는 치마를 통해 ‘연희’의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매력이 드러나지만, 활동의 제약이 많아 고역이었다고.

“치마를 입고 연기를 했더니 손발이 살짝 묶인 느낌이었어요. 치마의 폭 때문에 연기하는데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었거든요. 차에서 타고 내리는 것도 다리가 잘 벌어지지 않아서 부자연스럽고 불편했죠. 엔딩 장면에서 감독님께 ‘바지를 입을 수 없냐’ 물었더니 절대 안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감독님은 ‘청담동 며느리’ 같은 스타일의 ‘연희’를 더딘 몸에서 뿜어나는 부자연스러움을 염두하고 만드셨다고 하더라고요. 의상에서 오는 불편함에 상당히 고생을 한 작품이에요.”

김윤진은 연기의 마지막 과정은 “비우는 작업”이라고 평했다. 지난해 여름 열병처럼 앓았던 ‘연희’를 떠나보내는 과정까지 연기의 연장선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피비린내처럼 강렬한 모성애 캐릭터는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고 있다. 헤어스타일을 짧게 변화를 준 것도 한동안 ‘연희’에 빠져 살았던 자신을 구해내기 위한 비책이다.



“한 작품이 끝나면 휴식을 취하면서 제 자신에 대해 충전해요. 작품할 때마다 채워 넣었던 캐릭터를 비우고 있죠. 지금은 많이 비웠지만 연희는 절박한 캐릭터라서 기분도 다운되고 힘들더라고요. 내일이라도 딸이 죽는다는데 감정이 격해지지 않을 엄마는 없잖아요. 예민하고 날카로운 캐릭터로 3개월을 넘게 달려왔어요. 캐릭터에 자극을 받지 않고 살겠다고 다짐을 하면서도 알게 모르게 삶에 스며들더라고요. 연희로부터 빨리 벗어나기 위해 머리카락도 짧게 잘랐어요. 기분 전환이 좀 된 것 같아요(웃음).”

실제 생활과 혼동했을 정도로 ‘연희’ 캐릭터에 몰입했다는 김윤진의 고백처럼 <심장이 뛴다>에서 섬세한 모성애 연기로 ‘연기파 배우’라는 별명을 입증했다. 김윤진의 명품 연기를 스크린에서만 아닌 브라운관에서도 만날 수 있냐고 물었다.

“국내에서 영화만 찍다 보니까 ‘영화만 선호하는 게 아니냐’는 오해를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전 한 번도 드라마를 하지 않겠다고 생각한 적도 행동한 적도 없어요. ‘로스트’에 합류하고 나서부터 시간이 맞지 않아서 국내 드라마는 할 수 없었고요. 미니시리즈도 3개월 넘게 하고 주말드라마는 9~10개월 걸려서 시간을 뺄 수 없더라고요. 시간적 조율이 가능한 작품을 만난다면 바로 출연하고 싶어요. 드라마 선정 기준은 제가 봤을 때 재밌고 유쾌한 작품이면 되요(웃음).”

연기 경력 15년에 접어든 김윤진은 “이제야 조금 작품 전체를 볼 줄 아는 눈이 생긴 것 같다”고 털어놓으며 “20년 후에는 내 자신을 되돌아 봤을 때 만족스러운 연기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남겼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은주 기자 kime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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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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