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평화…'피없는 혁명'이냐 "다시 反動'이냐"

"짧은 평화…'피없는 혁명'이냐 "다시 反動'이냐"

기사승인 2011-01-29 12: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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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국제]튀니지발(發) 아랍권 민중봉기가 강타한 이집트가 '무혈 혁명'과 '반동 복귀'의 중대기로에 접어들었다.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반정부 시위 발생 이후 처음으로 공개석상에 등장, 내각해산과 정치개혁을 천명하면서 전국의 시위사태가 잠시 멈추며 '짧은 평화'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바라크 대통령이 하야의 뜻을 밝히지는 않아 이같은 그의 민심 달래기가 성공할 지 미지수인데다 이집트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원자력기구(IAEA) 의장의 정권 퇴진 요구가 더욱 거세지고 있어, 이집트 정국은 일촉즉발의 긴장이 이어지고 있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29일 이집트 국영 TV를 통해 중계된 연설에서 "내각에 오늘 사퇴를 발표할 것을 요구했다"면서 29일 중으로 새로운 내각을 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현지
언론들이 전했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또 이번 시위를 계기로 사회, 경제, 정치적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하면서 "우리는 더 많은 민주주의를 열망하며 실업과 빈곤, 부패와 싸우고 주민들의 소득수준을 높이기 위해 더욱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시위 도중 숨지거나 다친 희생자들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으며 "표현의 자유와 혼돈상태 사이에는 분명한 선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표현의 자유를 더욱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사태 해결을 위해 필요한 것은 대화라고 강조하면서도 시위대에 대한 경찰과 군 당국의 진압 조치를 옹호했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반정부 시위를 사회 안정을 흔들고 정치적인 시스템의 합법성을 해치기 위한 음모의 한 부분이라고 정의하고 "시위대에게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으나 폭력과 파괴행위(반달리즘) 탓에 질서회복을 위한 공권력 사용이 불가피했다"고 시위 진압의 정당성을 부각시켰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TV 연설 전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약 30분간 전화통화를 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그러나 주요 외신들은 이번 대국민 담화에서 이집트 국민들이 요구하는 대통령의 하야는 언급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집트 정부는 28일 오후부터 카이로를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시위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자 경찰과 군 병력을 대규모로 투입, 진압에 나서면서 통행금지와 인터넷 차단 등 강경대응 조치로 맞섰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격렬한 시위가 빚어졌던 카이로 시내 중심인 알-타흐리르 광장에는 29일 새벽 탱크와 장갑차 등 20여대의 군용차량이 진입, 군당국의 통제 아래로 들어갔다.

이집트에서는 28일 벌어진 사상 최대 규모의 반(反)정부 시위 과정에서 최소 26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진과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수에즈에서만 13명이 숨졌고 카이로에서는 최소 5명이, 나일 삼각주의 도시 만수라에서도 2명이 숨졌으며 알렉산드리아에서도 6명이 숨졌다.

알렉산드리아의 경우 머리에 총을 맞은 1명을 포함한 시위가담자 4명, 경찰관 1명, 발코니에서 시위를 지켜보던 여성 1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 곳곳에서 시위에 참가한 수만명의 시민들은 1981년부터 30년째 장기집권하고 있는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했다.

수도 카이로와 알렉산드리아 등 이집트 주요 도시 길거리에서는 정부가 통행금지령을 공포했음에도 시위대 다수가 거리에 남아 "이집트 만세"를 외쳤다.



시민들은 이집트 국가와 "이집트 만세" 구호를 외치며 자신들을 진압하는 경찰에 미소 지으며 이들과 포옹을 나누기도 했다.

심지어 현장에 선 경찰관 가운데는 시위대와 뜻을 같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아예 "시위에 참여하겠다"고 약속하는 이들까지 눈에 띄었다.

한 경찰관은 시위대를 향해 손가락을 들어 올려 승리를 뜻하는 V(victory)자를 그리기도 했다.

다른 한쪽에서는 시위대와 경찰이 나흘간 `동고동락'한 상대방을 서로 격려하고 과격행위를 사과하는 모습도 보였다.

시민들은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경찰력을 지원하고자 현장에 배치한 정부군 병사들에게도 기꺼이 손을 내밀었다.

카이로 중심부 타흐리르 광장에서는 시위대가 군용차량에 기어올라 병사들의 손을 잡고 "군과 국민은 하나다! 혁명이 왔다!"고 외쳤다.

경찰이 평소 인권탄압으로 악명높았던 데 반해 군은 그나마 중립적 태도를 보여 왔다는 시민들의 인식 때문인 듯했다.

시민들 나름대로 질서를 유지하려는 노력도 엿보였다.

일부 시위대가 경찰을 향해 돌팔매질하고 가스통에 불을 붙이는 등 과격 양상을 보이긴 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타이어에 붙은 불을 소화기로 끄거나 길바닥에 산산조각이 나 흩어진 유리조각을 쓸어담는 광경도 목격됐다.

대치상황 속 짤막하게 피어난 평화는 자정 직후 군용차량 20여대가 광장을 장악하고 진압작전을 개시하면서 이내 깨졌다. 이 시각, 무바라크 대통령은 TV 담화를 통해 내각 해산과 사회ㆍ경제개혁 방침을 발표하고 있었다.

경찰과 군을 피해 시민들이 내달리는 장면을 조그만 TV 화면으로 지켜보던 한 경찰관은 "이번 일이 헛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읊조렸다.

경찰이 봉쇄한 시내 한 도로변에는 곤봉과 대검으로 무장한 사복경찰들이 벤치에 앉아 차를 홀짝이고 있었다. 이들은 근처를 지나던 청년 두어 명이 눈에 띄자 "어딜 가? 당장 집으로 꺼져"라고 소리치며 뒤를 쫓았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 연합뉴스

신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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