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의 신분증 검사를 통과했다고 해서 그냥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시위대가 스스로 결성한 듯한 ‘자경대’에게 몸수색을 당했습니다. 손바닥으로 몸을 샅샅이 눌러봅니다. 총기 같은 게 있나 확인하는 것 같았습니다. 몸수색 장소 바로 뒤에는 사람들 수십명이 두 줄로 도열해 입장객을 환영하고 있었습니다. 환영한다는 의미의 노래를 계속 부르더라고요. 기타를 치는 사람도 있고요. 몸수색이 끝나자 옆에 서 있던 이집트인이 저에게 영어로 “welcome”이라며 악수를 청했습니다.
광장 안에는 천막이 많습니다. 대부분 비닐로 만들어진 것이고요. 그 안에 담요를 깔고 누워있는 사람들 모습이 보였습니다. 앉아서 신문을 읽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불을 피워 음식을 만드는 사람도 눈에 띄었습니다. 14일째 이어진 시위로 지쳤다고 볼 수도 있겠는데요. 이집트 사람들이 원래 밤늦게까지 일하거나 놀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경향이 있답니다. 제가 광장을 찾은 시간이 오전 10시30분쯤이었으니, 꼭 지친 것만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광장 안은 생각보다는 정돈된 모습이었습니다. 공중 화장실 근처에서 ‘찌린내’가 진동하기도 했지만, 그건 어쩔 수 없었을 겁니다. 쓰레기를 한곳에 모아둔 모습이 보였고, 도로 턱 아래는 빗질의 흔적도 있었습니다. 쉬고 있는 사람들은 빵을 먹거나 이야기를 하거나 하는 모습입니다. 커피와 과자 등을 파는 잡상인도 눈에 띄었고요.
외국 언론에 대한 이들의 경계는 많이 풀린 것 같습니다. 해외 언론이 카메라를 들고 취재하는 모습이 광장에서 여러 차례 목격됐습니다. 자기들끼리도 휴대전화로 시위 모습을 촬영하더라고요. 광장 앞을 지키고 있는 탱크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론을 무조건 환영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 서양인 카메라기자는 길가에 누워 잠자는 사람들의 모습을 찍다가 시위대의 제지를 받기도 했습니다. 저도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촬영할 때 ‘노(NO)’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쫓아와서 막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타흐리르 광장 사람들은 정부와 야권 간 협상에 관계없이 시위를 오랫동안 할 것 같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오직 무바라크 퇴진이니까요. 무바라크가 어떤 형식으로든 대통령 자리에 있게 된다면 시위는 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문제는, 시위대가 말 그대로 순수한 세력이라는 겁니다. 그들은 뚜렷한 대안을 가진 세력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한 시위 참가자는 술레이만도, 엘바라데이도, 무슬림형제단도 다 자신들의 대표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술레이만에 관해서는 두 얼굴을 가진 자라고 표현했고, 엘바라데이는 그냥 한 사람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누구를 지지하냐는 질문에 그는 “good working”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국민을 잘 살도록 일을 잘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상적이지만 현실 정치에서는 힘을 얻기 힘든 관념일 수도 있습니다. 현실적 대안을 갖지 못한, 순수 세력이 궁극적으로 어떤 결과물을 얻어낼지 지켜보는 것도 이집트 사태를 지켜보는 흥미로운 포인트일 듯합니다.
카이로= 국민일보 쿠키뉴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