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문화] 친아버지가 자신의 딸을 성폭력한다는 내용은 사회적으로 직접 거론이 어려운 주제다. 뉴스의 범위를 벗어나는 순간 이 ‘친족 성폭력’은 그 어떤 형태로 대중들에게 전달되어도 비난받는다. 대다수의 대중들에게는 불편함을, 유사한 일을 겪은 이들에게는 또한번의 아픔을 주기 때문이다.
연극 ‘유리알 눈’이 독특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캐나다 불어권 극작가 미셸 마크 부샤르가 2009년 발표한 작품으로 국내 무대에 오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극중 배경은 캐나다 인형 장인인 ‘다니엘’의 작업장이다. 다양한 유형의 인간을 정교하게 닮은 수제 인형을 만드는 ‘다니엘’은 ‘미국 국립 인형 예술가 협회’ 회원으로 추대되고, 인형작품 회고전 계획을 발표회는 기자회견을 앞둔 하루 전날, 미모의 아가씨 ‘펠로피아’가 집으로 찾아온다.
그녀는 다름 아닌 15년 전 집을 떠났던 막내딸 ‘에스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성폭력에 시달렸던 그녀는 성인이 된 뒤 성형 수술을 하고 가족 곁으로 돌아와 처절한 복수에 나선다.‘펠로피아’(에스텔)는 자신을 몰라보는 ‘다니엘’을 노골적으로 유혹하고, 이를 통해 자신이 느꼈던 고통을 어머니와 언니에게 고스란히 되돌려주려 한다.
결국 ‘펠로피아’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가족들은 혼돈에 빠지고 기자 회견을 앞두고 ‘다니엘’의 죄악을 폭로하겠다는 ‘펠로피아’의 협박에 사태는 점점 파국으로 치닫는다.
연극의 내용도 ‘불편’하지만, 극중 대사도 이들의 관계를 인지한 상황에서는 껄끄럽다. ‘펠로피아’ (에스텔)가 자신이 아버지에게 당한 일을 자세히 설명하거나, 언니 ‘브리지트’가 아버지를 보호하려, 동생의 치부를 드러내는 대사들은 비정상적인 가정과 ‘친족 성폭력’이 얽혀있는 ‘불편한 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는 배우들에게도 전달된다. 아버지 역을 맡은 배우 이상구는 “굉장히 어려운 작품이다. 이런 성적 취향을 가진 것도 아니고.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예를 들면 엘리베이터에 아름다운 여성과 고층을 올라가면 나도 모르게 침을 삼킨다. 그것은 남자들이 컨트롤할 수 없는 본능이다. 그런 것에서 출발한다면, (극중 인물의 성향이) 내안에도 존재하지 않을까 싶다. 사실 이 작품을 하고 나서는 괴로워서 잠을 잘 못잔다”고 밝혔다.
이 작품은 지난 20년간 호흡을 맞춰온 연출가 까띠 라뺑(외대 불어과 교수)과 희곡 번역가 임혜경(숙대 불문과 교수)이 극단 ‘프랑코 포니’를 정식으로 세우고 처음 선보이는 연극이다.
다소 의아한 것은 연극을 보는 주체에 대한 범위다. ‘친족 성폭력’은 공개적으로 해결책이 거론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쉽게 입에 담지 못한다. 그리고 이를 인식하는 범위는 주로 피해자의 입장에 서는 어린 아이들이 아닌, 가해자 혹은 잠정적 가해자의 입장에 있는 성인들의 몫으로만 인지되어 왔다. 그런데 이 연극은 이를 무너뜨렸다. 극단이 연극을 볼 수 있는 연령대의 범위는 12세다.
연출가 까띠 라뺑은 “그 이하의 미성년자들도 성폭행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12살은 어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6살도 강간을 당할 수 있는 현실이라면, 12살 아이들에게 이 작품을 보지 말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싶다”고 말했다. 사회적으로 터부시되는 ‘친족 성폭력’에 대해 인식의 차가 다른 것이다.
연극이 무대에 오르고 관객들에게 선을 보인 이후에 어떤 평가와 논란이 일지는 예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친족 성폭력’에 대해 ‘유리알 눈’은 배우들의 입과 행동을 통해 직접적으로 문제 제기를 했다는 점이다.
이상구, 박현미, 김정은, 이서림이 출연하며 오는 23일부터 3월 13일까지 서울 서교동 산울림소극장에서 공연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유명준 기자 neocross@kukimedia.co.kr / 사진 박효상 기자 islandcity@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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