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A교사 인터뷰는 익명성 보장을 위한 ‘협상’으로 시작했다.
그는 올해와 2004년 발간된
고등학교 검정, 인정 교과서를 각각 집필했다.
협상이 끝나자 대화가 시작됐다.
-교과서 집필진은 어떻게 구성되나.
“출판사가 대표 집필 교수 한 명을 찍으면, 그 교수가 나머지 집필진을 꾸리는 방식이 있다. 이 경우 해당 교수가 가르치는 대학원생이 집필자로 참여하기도 한다. 그런 대학원생 중에는 현직 교사도
있다. 또 다른 방식은 출판사가 집필자를 한 명, 한 명 모두 섭외하는 거다. 2003년(내가 교과서 집필에 참여할 때)에는 교수님이 교사 신분으로 대학원에 다니던 내게 직접 (집필 참여를) 권유했다.”
-교수와 교사, 집필 과정의 역할 분담은 어떻게 되나.
“보통 교수가 대표 집필자고, 교사는 일반 집필자가 된다. 적게는 한 사람, 많게는 몇 사람이 한 단원씩 맡는다. 당시 교수님과 대학원생이던 내가 같은 단원을 맡았는데 사실상 내가 다 썼다. 내 이름도 집필자로 들어가긴 했다.”
-그럼 교수의 역할은?
“방향성 제시와 검토다. 내가 원고를 다 써서 갖다 주면 오류를 찾아줬다. 4, 5회 정도 검토 과정을 거쳤다.”
-비슷한 경험을 가진 동료 교사가 꽤 되겠다.
“더 심한 경우도 많다. 교과서는 인정보다 검정 교과서가 권위가 있는데 대학원 다닐 때 내가 썼던 건 인정교과서다. 같은 대학원을 다닌 한 동료 교사는 검정교과서 한 챕터를 혼자 다 썼으니까. 내 지도교수님은 검토라도 제대로 해줬는데 그쪽은 그것도 제대로 안 했다고 들었다.”
-대표 집필자인 교수가 왜 검토만 하는지 이상하지 않았나. 교수님께 직접 집필하시는 게 어떠냐고 말하지 그랬나.
“그걸 어떻게 내가…. 교수와 제자 관계가 어떤 건지 잘 아실 텐데. 교수가 시키면 학생이 거절할 수 없다. 수백 명 중 한 명이 거절할까. 불만 품는 경우도 있겠지만 자기 이름도 집필진에 들어가고, 인세를 받으니까 거기서 위로도 받고. 관례상 그냥 그렇구나, 했다.”
-그래도 그런 상황이 납득하긴 어려웠을 것 같은데?
“개인적인 이야기인데 담당 교수님이 인간적으로는 잘 해줬다. 그래서 화가 나진 않았다. 주위 사람에게 물어보면 (분노한 경우가) 꽤 많겠지. 정확히는 대표 집필자가 교과서를 직접 써야 하는 거다. 그런데, 지금 분위기는 검토라도 하면 집필했다고 보는 거다. 그냥 (대학원생이었던) 내가 (집필) 하는 거지.”
-대학원생이 쓴 논문에 교수가 이름만 슬쩍 올리는 것과 뭐가 다른가.
“이 질문에 답하면 비약일까봐 말씀 안 드리겠다.”
그는 이 대목에서 “하하하” 웃었다. 웃음의 의미는 알 수 없었다.
“교수가 일을 안 해서 문제 될 때도 있지만 자기 주장이 너무 세서 문제 될 때도 있다. 집필진이 1차 원고 작성을 끝내면 함께 모여서 토론을 한다. 이때 교수가 다른 사람이 쓴 부분을 지적하면 집필한 교사는 반박하기 힘들다. 분위기가 그렇다. 교육계는 다 연결돼 있고, 교사는 교수를 꺾기 힘드니까.”
-교과서 집필하면 본인에게 유리한 게 있나.
“교과서를 쓰는 건 일종의 명예다. 대학원생인 교사 입장에선 나중에 교수 되려 할 때 실적이 될 거고. 교수도 교과서 쓰면 평가 점수 올라가고. 교과서 쓰는 교수, 그렇게 많지 않다. 그 분야에서 유명해야 집필자가 된다.”
-지난해에도 교과서를 썼는데 어땠나.
“출판사가 나한테 집적 연락해 참여했다. 교수 1명, 교사 5명이 한 단락씩 맡아 집필했는데 이번에는 교수가 120% 자기 역할을 했다. 자기가 맡은 단락 외에 교사들한테도 많은 도움을 줬다. 저 사람은 유명 대학 출신도 아닌데 정말 잘 하는구나, 그런 생각했다. 젊은 교수라 다른 것 같았다.”
-한 명의 집필자가 한 단락을 담당하면 오류를 확인하기 힘든 구조겠다.
“현실적인 고민인데 한 명이 한 챕터를 맡으면 전문성이 떨어질 수 있다. 그런데 여러 사람 쓰자니 출판사 입장에선 돈 문제가 걸린다. 저자 입장에서도 집필진이 다수인 걸 선호하지 않는다. 인세 때문에.”
-집필진, 출판사, 교육과학기술부가 검증하는데도 교과서에 오류가 있는 이유는 뭘까.
“교과부가 심사위원을 꾸려서 며칠씩 합숙하며 검토한다. 인원이 부족한 거지. 수많은 교과서를 어떻게 다 꼼꼼히 볼 수 있겠나. 심사위원이 교과서를 검토하고 저자에게 코멘트를 달아주는데 집필자가 무시하는 경우도 있다.”
-그게 가능한가.
“교과부가 교과서 심사하는 과정에서 ‘80점, 합격’이라 평가했다 치자. 몇 가지 오류는 있지만 이미 합격을 시킨 거다. 명백한 팩트 오류, 오·탈자면 고치겠지만 집필자와 심사위원, 보는 시각에 따라 정답이 달라지는 케이스는 집필자가 권고 사항을 모두 받아들이진 않는다.”
-교과부가 교과서를 심사하는 과정에서 탈락하는 경우도 많나.
“가끔. 이런 경우 재심사 요청은 할 수 있는데 합격률이 굉장히 낮아진다. 교과서 다시 쓰는 과정도 너무 힘들고, 출판사 입장에서도 부담되니까 재심 신청 안 하는 경우도 많다. 지난해 심사에선 한 교과서(과목을 밝혔으나 기사화되기를 원하지 않았다)가 떨어졌는데 재심에서 붙었다. 집필진이 그쪽 과목에서 막강해 재심에 합격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심사위원이 집필진의 논리를 이길 자신이 없었겠지.”
-교육과정이 바뀌어도 교과서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예전 자료, 교과서를 재구성한다고 보면 된다. 새로운 걸 쓸 용기가 없을 수도 있고. 특히 이과 쪽 교과서가 그렇다. 교과부 심사 합격을 바라느냐, 참신한 걸 바라느냐 두 가지 중 하나를 고르자면 대부분 전자다. 정확하게, 쉽게, 딱딱 떨어지게 쓰길 원한다. 창의적으로 쓰면 현장 교사가 가르치기 힘들다고 그런다.”
-재구성할 때 참고 자료인 예전 교과서에 오류가 있는지 확인하나.
“그렇게 해야겠지만 몇 년 동안 문제없이 쓰였던 게 교과서니까 그냥 믿는 편이다.”
뒷모습이라도 사진을 찍으려 했으나 A교사는 촬영을 정중히 거절했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연락이 왔다. 실명과 교과명, 출신 대학이 거론되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지난달 25일 한 교사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본보 보도(3월 25일자)를 통해 초등학교 교과서에 ‘아리랑 세계 1위’ 오류가 실린 것을 확인한 교사는 집필진의 잘못을 지적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제 얘기 기사에 나와요? 안 돼요, 저는 공무원이잖아요.” 내가 물었다. “그럼 교사 말고 누가 교과서 오류 문제를 지적할 수 있겠어요?”
‘그게 무엇이 됐건 잘못된 건 잘못됐다고 말하는 스승’을 기대하는 건 좀 이기적인 것 같다. 누구든 자신이 속한 조직의 치부를 드러낼 때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스승도 직원이고, 조직원이며, 소시민이니까.
인터뷰를 하면서도 몇 번씩 주위를 둘러보던 A교사의 심정은 이해됐다. 그런데 문제는 ‘A교사만 두려워한다’는 거다. 교수 대신 교과서를 집필했다는 그보다 대학원생에게 교과서 집필을 맡긴 채 이름만 올리는 교수가 더 두려워해야 하는 거 아닌가.
박유리 기자 nopim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