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영화] 영화 ‘시선너머’(제작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권’이라는 다소 묵직한 소재를 다룬 옴니버스 드라마다. ‘인권’은 두꺼운 교과서를 독파하며 배워야 할 딱딱하고 지루한 소재 같지만 영화는 현실감 있는 에피소드들로 이해하기 쉽게 다가선다.
강이관, 부지영, 김대승, 윤성현, 신동일 다섯 명의 감독은 탈북자, 이주노동자, 정보인권 등에 대한 ‘우리의 시선’을 5가지 이야기로 예리하게 꼬집는다. 또 인권의식이 결핍된 현대인들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도 담아냈다.
김대승 감독의 ‘백문백답’은 개인정보의 수집과 통제가 사람을 위협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능력 있는 디자이너 ‘희주’(김현주)는 회사 팀장 ‘성규’(김진근)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희주’는 ‘성규’를 경찰에 고소하지만 경찰은 조사 과정에서 ‘희주’가 ‘성규’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이 아니냐며 ‘희주’를 오히려 피의자 취급한다. 경찰은 두 사람이 사무실에 함께 들어가는 CCTV 영상은 물론이고 ‘희주’의 대출내역, 고교시절 정보까지 모두 공개하며 ‘희주’를 섬뜩하게 한다.
신동일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진실을 위하여’는 인터넷으로 인한 무분별한 정보 노출과 악성 댓글이 얼마나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 준다. 27세 예비맘 ‘보정’(심이영)은 남편과 나들이를 나갔다가 산통을 겪고 병원을 찾는다. 다행히 유산의 위기는 모면했지만 병원 로비에서 목돈이 든 가방을 잃어버린다.
가방을 찾기 위해 부부가 병원 측과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보정’은 아이를 유산한다. 그럼에도 병원 측은 미안해하기는커녕 당당하다. 이에 화가 난 ‘보정’은 인터넷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글을 올려 누리꾼의 위로를 받지만 병원 측은 ‘보정’의 결혼 전 낙태 기록을 온라인에 공개하며 그녀를 사기꾼으로 몰아간다. 그녀를 위로했던 누리꾼들은 바로 등을 돌리며 그녀를 역공격하는데….
‘진실을 위하여’를 통해 우리는 온라인 악성 댓글 문제, 병원 내 환자의 사생활 보호 문제 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그간 확실하지 않은 홈페이지의 글을 보고 마녀사냥을 한 것은 아닌지, 우리가 소리 없는 폭력을 행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케 한다. 많은 연예인들이 ‘악플’로 인한 고통을 호소했고 심지어 자살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 신동일 감독은 “실제로 이 에피소드에는 고 최진실을 추모하기 위한 뜻이 담겼다”고 밝혔다.
이 외에도 강이관 감독의 ‘이빨 두 개’는 탈북자를 바라보는 시선을 담았고, 부지영 감독의 ‘니마’는 불법체류자에 대한 우리의 시선을 현실적으로 묘사한다. 윤성현 감독의 ‘바나나 쉐이크’는 이주노동자와 우리는 같은 인간이고 동등한 친구라는 것을 역설한다.
흔히 우리는 ‘다르다’와 ‘틀리다’를 잘못 사용한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다르다는 ‘차이’로, 틀리다는 ‘차별’로 이어진다. 영화는 나와 다르다고 ‘틀린’ 사람으로 차별할 것이 아니라 서로의 다른 점을 존중하고 인정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시선너머’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한 다섯 번째 ‘시선시리즈’다. 12세 이상 관람가로 28일 개봉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한지윤 기자 poodel@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