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려진 엄지도, 가난도, 나이도…최호성을 막지 못했다

잘려진 엄지도, 가난도, 나이도…최호성을 막지 못했다

기사승인 2011-05-30 09:32:01
"
[쿠키 스포츠] 그의 스윙 폼은 여느 프로선수들처럼 멋있지 않았다. 국내 최장타자 김대현처럼 엄청난 스윙크기에 시원스레 어깨가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배상문이나 김경태처럼 부드럽고 안정적이며 흉내 내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운 스윙도 아니다. 흔히 보는 아마추어골퍼 같은 폼. 그래서 그에게 주목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언론도, 골프 전문가들도, 선수 동료들도….

최호성(38). 29일 끝난 한국프로골프투어(KGT) 레이크힐스오픈에서 8언파의 스코어로 우승을 차지한 그는 함박 웃음을 보이며 캐디로 4일 내내 골프백을 맸던 장인과 포옹했다.

최호성이 처음 골프채를 잡은 건 25살 때였다. 그 나이면 남들은 투어 첫 우승을 차지하거나 최전성기를 누릴 때다. 그는 가난했다. 그래서 일해야 했고 골프장 영업사원을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어깨 너머로 골프를 배웠다. 스윙코치에다 마인드컨트롤 전문가까지 대동한 ‘부잣집’ 골퍼들이 가진 여건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래도 최호성은 꿈꿨다, 멋진 투어프로가 되는 것을. 혼자서 남들보다 수십배 많은 연습공을 쳤다.



(사진제공=KGT)

하지만 연습 대신 ‘밥벌이’를 위해 온갖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나날들이 더 많았다.

2001년 28살 때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퀄리파잉스쿨을 통과해 처음으로 프로투어 선수가 됐다. 우승과는 전혀 인연이 없었다. 그저 그런 무명선수…. 보통사람이라면 그렇게 5~6년의 무명 프로골퍼로 지내면 아예 선수생활을 접고 만다. 변변한 상금도 없이 일상 전체를 골프에 바치는 생활로는 아예 생계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최호성은 버텨냈다. 악착같이 연습하고 자기 관리에 온 열정을 쏟았다. 그에겐 술도, 담배도, 아니 다른 어떤 유혹도 다가오지 못했다.

그의 오른손 엄지 손가락 첫 마디가 없다. 20살 때 일하다 사고를 당해 절단됐기 때문이다. 골퍼에게 오른손 엄지 손가락 한 마디는 생명과도 같다. 더 멀리 공을 치게 하고 더 똑바른 방향으로 공을 보내는 방향타와 같기 때문이다.

2008년 하나투어챔피언십에서 국내 선수 가운데 가장 멀리 공을 친다는 김대현과 연장접전을 벌인 끝에 그는 첫 우승을 했다. 다들 축하하는 자리에서 최호성은 엄지 한 마디가 없는 오른손을 들어올렸을 뿐이다. 무뚝뚝해 보이는 외모, 털털한 웃음은 3년 전 지고도 꽤 환하게 웃던 김대현의 표정과 묘한 대비를 보여줬다.

그리고 3년이 지났고, 최호성은 오랜만에 우승했다. 대다수 선수들이 좁은 페어웨이와 깊은 러프로 점철된 코스에 적응하지 못하고 헤맸지만, 그는 별로 멀리 보내지 못하는 샷으로도 대회 4일 내내 언더파를 기록했다.

“특별한 목표는 없습니다. 매 대회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임할 뿐입니다. 모든 생활에 최선을 다하고 자기관리에 집중한다면 나이가 많다고 결코 죽지는 않습니다”

최호성이 든 우승컵은 그냥 프로골프계에서 흔한 우승자 모습만 보여주진 않았다. 오히려 너털웃음 뒤에 놓인 그의 삶 전체가 더 환한 빛을 내고 있었다. 힘든 역경과 그 가운데서도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의지, 최선을 다해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과 조건을 감당해낸 ‘거인’의 모습 말이다.

최호성이 살아온 인생의 무게와 시간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최정상급 프로골퍼들처럼 멋있어 보이지 않는 그의 스윙폼을 보고 절대 비웃을 수 없다. 땀과 눈물과 인내가 베인 그의 영혼이 전부 서려있기 때문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신창호 기자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
신창호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