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테러, ‘풀리지 않은 의문들’

노르웨이 테러, ‘풀리지 않은 의문들’

기사승인 2011-07-25 04:01:00
[쿠키 지구촌] 93명이 죽고 100여명이 부상당한 노르웨이 ‘7·22 폭탄·총기 테러’ 사건이 발생한 지 이틀이 지났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24일(현지시간) ‘여전히 남은 질문’이라는 제목 하에 이번 테러 사건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의문점 등에 대해 보도했다.



첫째는 공범이 있는지 여부다. 한 시간 동안 한 사람이 섬 곳곳을 돌아다니며, 86명을 조준 사격하는 것이 가능하냐는 의문이다. 우토야 섬 총기 난사 현장에서 검거된 범인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비크(32)는 오슬로 폭탄테러와 우토야 섬 총기 난사 사건 모두 단독 범행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르웨이 경찰 역시 공범 여부에 수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공범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은 상태다. 스베이능 스폰하임 경찰청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아직은 확실하지 않다”면서 “현재는 다른 용의자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라고 밝혔다.

둘째는 범행 동기와 과정이다. 왜 총리 집무실과 노동당 청소년 캠프를 범행 대상으로 잡았는지 등에 대한 명확한 범행 동기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가 범행 전 인터넷에 올린 1500쪽의 문서 등을 통해 판단하면, 브레이비크는 병적인 노르웨이 민족주의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또 집권 노동당의 다문화 정책에 상당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총리 집무실이 있는 정부청사 건물과 노동당 청소년 캠프를 범행 대상으로 삼은 것만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현 집권당을 증오했는지 가늠할 수 있다. 그는 2003년 가입했던 우파 진보당의 이념이 중도로 이동하자, 2006년 탈퇴했다.

유튜브에 올렸다 삭제된 그의 12분짜리 동영상 ‘2083 템플 기사단’에서 그는 스쿠버 다이빙 복장을 한 채 총을 들고 등장한다. 여기서 그는 “우리가 우리의 십자군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문화적 마르크시즘부터 학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셋째 경찰이 왜 헬리콥터를 타지 않고, 훨씬 시간이 오래 걸리는 차량을 이용했냐는 점이다. 또 경찰이 총기를 난사하는 범인을 진압할 장비 등을 가지고 섬에 진입했는지 등도 확인해봐야 할 점이라고 가디언은 지적했다.

노르웨이 경찰은 이번 연쇄 테러 사건에 있어서 늑장 대처 등으로 비판의 도마에 오르고 있다. 사건이 발생한 22일, 경찰은 오후 5시30분 처음 사고를 접수하고도 30.5㎞ 거리에 있는 우토야 섬에 도착할 때까지 55분이나 걸렸다. 당초 경찰은 운송 수단 문제로 섬에 진입하는 데 1시간 30분이 걸렸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경찰의 늑장 대처가 사태를 키웠다”는 비판이 쏟아지자, “처음 경찰이 섬에 진입한 것은 오후 6시25분, 범인을 검거한 것은 오후 6시28분이었다”고 정정 발표했다.

가디언은 “수도에 경찰 헬리콥터조차 없는 상황이라면, 과연 다른 테러에 대비할 수 있겠느냐”면서 경찰의 대테러 대비 상태 및 진압 능력에 의문을 제기했다. 또 노르웨이 오슬로는 영국 런던이나, 미국 워싱턴 D.C에 비해 수도 보안 능력이 현저히 뒤떨어진다고 비판했다.

넷째는 범인 생포 과정이다. 노르웨이 경찰은 현재까지 브레이비크를 검거한 과정에 대해 어떤 구체적인 사항도 발표하지 않고 있다. 일단 경찰 발표에 따르면 범인은 경찰이 진압하자 순순히 투항한 것으로 보인다. 외신들은 “브레이비크는 경찰과 싸우거나 도망가려 하지 않았으며 자살 시도 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브레이비크는 “자신의 행동은 노르웨이에 혁명을 가져오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고 그의 변호사가 전했다. 브레이비크는 25일 법정에 서게 된다.

다섯째는 향후 노르웨인들의 반응이다. 노르웨이인들은 선진 복지 국가라는 측면에서 국가에 대한 높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오슬로 정부청사 테러가 발생하자, 무슬림의 범행일 가능성이 높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이에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학살을 저지른 범인이 노르웨이인이라는 사실에 대해 더욱 경악을 금치 못한다는 것이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총리는 “노르웨이는 앞으로도 열린 민주주의 사회를 지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가디언은 이 사건 이후로도 노르웨이가 다문화정책을 옹호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한다고 전했다.

한편 범죄심리학자들은 “브레이비크는 전형적인 외톨이이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테러 사건이 보도된 후 그의 생부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1995년 이후로는 만난 적이 없지만, 어렸을 때부터 타인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고 전했다.


양지선 기자 dybsun@kmib.co.kr
양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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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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