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석유 주유소, 단속 어떻게 피하나 봤더니

유사석유 주유소, 단속 어떻게 피하나 봤더니

기사승인 2011-10-04 19:33:00

[쿠키 경제] 4일 오후 경기도 평택의 H주유소. 한국석유관리원 단속원을 비롯한 유사석유 판매 단속반이 불시에 들이닥쳤다. 주유소 직원들은 막무가내로 큰소리쳤다. 한 직원은 “당신들이 누군데 남의 사무실을 뒤지느냐”며 따졌다. 이 주유소는 지난 6월에도 유사석유를 팔다가 적발돼 과징금 5000만원을 물었다.

평택소방서 대원이 먼저 시설 관련 서류를 조사했다. 평택소방서가 발급한 ‘위험물 허가서’에는 석유저장탱크 5개가 등록돼 있었다. 등록된 탱크 외에 다른 저장소가 발견되면 ‘위험물안전관리법’에 위반된다.

단속원들은 주유소 마당 지표면에서 지하투과레이더(GPR) 탐사기로 금속 탐지를 시작했다. 지하에서 전도체가 반사되는지를 보고 등록된 것 외의 저장소가 있는지 찾는 것이다. 일단 다른 탱크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어 본격적인 탱크 내부 조사가 시작됐다. 단속원 두 명이 주유소 마당에서 맨홀 뚜껑을 들어내자 지름 60㎝ 정도의 탱크 입구가 나왔다. 산업용 내시경으로 탱크 속을 들여다봤다. 지름 1㎝ 굵기의 나선형 고무호스 끝에는 고무호스와 같은 굵기의 원통형 카메라가 달려있었다. 다른 쪽 끝에는 카메라 방향을 조종하는 조종기가 있었고 조종기 화면으로 카메라가 찍는 영상이 보였다.

카메라를 3m 가량 수직으로 내려보낸 뒤 오른쪽으로 돌리자 드디어 용접자국이 있는 철제 판이 나타났다. ‘격벽’이었다. 단속반이 시료를 채취해가는 입구 부분엔 정상석유를, 격벽 너머엔 유사석유를 저장하도록 만든 장치다. 이 격벽은 지난 6월 적발됐을 때도 발견됐다. 당시 평택소방서가 탱크 내부를 원상복구하도록 시정명령을 내렸지만 그대로였다. 탱크 바닥에서는 격벽 너머에 있는 유사석유를 빼내는 데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별도의 관이 보였다.

그런데 카메라를 이리저리 돌리던 단속원들이 갑자기 한숨을 내쉬었다. 격벽에 가로 50㎝, 세로 30㎝ 크기의 직사각형 창문이 뚫려 있었다. 네 모서리에는 뚜껑을 열고 닫을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하는 너트 자국이 있었다. 함께 단속을 나온 평택소방서 김원철 소방교는 “격벽이 뚫려 있으면 탱크 안의 내용물을 이동할 수 있게 해놓은 것이기 때문에 불법구조물을 설치했다고 볼 수 없다”며 “유사석유 판매업자들은 이런 식으로 법 사이를 피해간다”고 말했다. 이런 경우 이 탱크 안에 있는 석유는 모두 정상제품이거나 모두 유사석유다. 두 번째 탱크도 마찬가지였다. 시료 검사 결과 유사석유로 판별되면 석유사업법 위반 혐의가 적용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엔 미심쩍어도 손 쓸 방법이 없다.

세 번째 탱크는 주입부가 바닥까지 관으로 막혀 있었다. 내시경 카메라를 넣어도 탱크 안이 어떻게 생겼는지 볼 수 없도록 해놓은 장치였다. 단속원들이 힘겹게 관을 땅 위로 끌어올렸지만 탱크 안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나머지 두 개 탱크도 마찬가지였다.

다음으로는 유사석유가 나오도록 별도의 스위치나 관을 설치했는지 살펴보기 위해 주유기를 뜯어봤다. 계량판이 있는 주유기 윗부분을 뜯어내고 주유기 바닥까지 파헤쳐봤지만 불법 장치는 발견되지 않았다.

석유관리원 김수진 팀장은 “수법이 점점 더 지능화돼 현장 적발이 쉽지는 않다”며 “탱크에 격벽이 설치돼 있다는 것 자체가 유사석유를 판매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가정하고 시료를 채취해 성분검사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신은정 기자
fish81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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