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프 알이슬람은 19일 새벽(현지시간) 리비아 남부 사막의 우바리 인근에서 시민군 15명에게 붙잡혔다. 체포 직후 시민군이 ‘누구냐’고 묻자 가짜 이름을 댔다. 갈색 전통 복장을 입고 있었지만 테 없는 안경은 TV 화면 모습 그대로였다.
사이프 알이슬람은 겁먹은 표정이었으나 체포 과정에서 저항하지 않았다고 시민군 사령관 아흐메드 아마르가 전했다. 그는 “나를 사살하면 시신은 진탄으로 보내라”고 했다. 오른손 손가락 세 개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다. 러시아 이타르타스통신은 그가 석방 대가로 20억 달러를 얘기하며 협상을 시도했다고 보도했다.
이송 비행기에 동승한 로이터통신 특파원은 “지금 괜찮으냐는 질문에 그가 ‘그렇다’고 말했다”면서 “손가락 상처는 한 달 전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군 공습 때 입은 것”이라고 전했다.
리비아 진탄 지역 시민군은 그가 우바리 인근 도로를 거쳐 알제리나 니제르로 도피한다는 첩보를 받고 매복했다가 수상한 차량 2대를 붙잡았다. 국외 탈출을 돕던 가이드가 시민군에 제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카다피의 7남1녀 중 차남으로 공식 직함은 없었으나 가장 유력한 카다피의 후계자였다. 런던정경대(LSE)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때 개혁을 주장했지만 내전 발발 후 앞장서서 시민군을 탄압했다.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의해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태다.
미국과 유럽은 리비아에 공정한 재판을 요구했다. 아버지 카다피처럼 재판 없이 끔찍하게 처형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ICC는 20일 신병 인도를 리비아에 요청했다.
그러나 과도정부는 이날 사이프 알이슬람을 리비아 법정에 세우겠다고 밝혔다. 무하마드 알알라귀 법무장관은 “그를 리비아 법대로 공정하게 재판하겠다”고 말했다.
카다피 일가는 만신창이가 됐다. 장남 모하메드와 5남 한니발, 딸 아이샤는 알제리에, 3남 사디는 니제르에 피신해 있다. 4남 무타심, 6남 사이프 알아랍은 전쟁에서 숨졌고, 7남 카미스는 행방이 묘연하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