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영화] 영화 ‘사물의 비밀’의 이영미 감독이 예정된 개봉관 숫자에 비해 급격히 줄어든 개봉관 수와 열악한 대우에 분노를 드러내며 일명 ‘퐁당퐁당’ 상영 논란이 재점화 되고 있다. ‘퐁당퐁당’은 한 영화관에서 영화를 교차 상영하는 것을 말하는 영화계 은어다.
영화가 ‘퐁당퐁당’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잘 보지 않는 시간대인 조조와 심야로 밀려날 가능성이 크며, 1일 3회 이상 상영을 장담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른다. 표면상 스크린 수가 수백 개에 이르더라도 실제로는 해당 스크린 수만큼 영화를 상영하지 못하는 것이다. 당연히 이는 영화의 흥행과 직결되고 ‘퐁당퐁당’으로 배치 받은 영화는 설 자리가 없어진다.
사실 배급사와 극장은 수입을 무시할 수 없기에 관객이 상대적으로 적은 저예산 독립영화는 교차 상영으로 배치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독립영화는 더 많은 관객과 만날 기회를 박탈당한다. 작품과 예술성은 뛰어나도 상업적 측면을 충족시켜주는 데 한계가 있어 외면 받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빠진 ‘사물의 비밀’ 이영미 감독은 지난 20일 오후 언론사 영화담당 기자들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그는 “영화 개봉 3일 후 돌아가는 상황들을 보다가 너무 마음이 아파 이 글을 쓴다. 본 영화의 감독으로서 너무 당황스럽고 억울하다”며 “개봉 일주일 전까지 50~100개관을 배급사와 함께 계획했고 확정적으로 알고 있었던 저희가 개봉 날 직전에 20개도 안 되는 극장 수로, 그나마 ‘퐁당퐁당’이 되어버려 한 주도 기약할 수 없어졌다는 현실에 경악했다”고 설명했다.
이 감독은 24일 쿠키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글에서 표현하지 못한 속사정을 드러내며, 현 상황의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는 “상업영화 중에서 광고비를 많이 쓴 영화가 ‘퐁당퐁당’을 당하는 경우는 지극히 적다. 광고비를 많이 쓴 영화는 관수도 10배에서 20배 이상 많이 받는다. 우리 영화가 20개관에서 개봉하면 그 영화들은 200개나 400개관에서 개봉하니 게임 자체가 될 수 없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것도 프라임 타임에 배치되는 것도 아니고 아침 9시나 저녁 10시에 배정되니 보고 싶어도 못 보는 경우가 생겨 관객과 소통할 수 없다. 마라톤을 뛴다고 했을 때 다른 주자가 이미 반 정도를 뛴 후에야 풀어주는 것처럼 묶여 있는 기분”이라며 “이는 불공정한 거래이고 매우 부당하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또 그는 “광고비용을 많이 사용할 수 없는 우리 영화 같은 경우에는 관객의 입소문을 의지해야 한다. 입소문이 퍼지려면 적어도 2주 정도의 시간은 필요한데 그전에 영화가 극장에서 막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니 정말 안타깝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는 비단 ‘사물의 비밀’만 해당되는 상황이 아니다. ‘퐁당퐁당’ 문제는 평단과 관객들의 호평을 받는 영화들이 극장가에서 순식간에 사라질 때마다, 제기됐다.
‘집으로’의 이정향 감독과 톱스타 송혜교의 만남으로 주목받은 영화 ‘오늘’은 ‘퐁당퐁당’ 상영으로 조기 퇴출당했다. 영화를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환경에 제작자와 관객은 울분을 터트린다.
지난 2009년 영화 ‘하늘과 바다’와 ‘집행자’ 역시 교차 상영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장나라가 주연을 맡고 아버지인 주호성 대표가 제작한 ‘하늘과 바다’는 개봉 첫날부터 이른 아침과 늦은 밤에만 상영되는 수난을 겪었다. 이에 주호성 대표는 “가족들조차 ‘퐁당퐁당’으로 표를 살 수가 없다. 아무리 우스운 영화여도 개봉 첫날, 첫 주는 그러지 않을 법한데 이는 우리 영화를 죽이기로 한 것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며 결국 필름을 회수했다.
조재현과 윤계상이 주연을 맡은 ‘집행자’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영화는 입소문을 타고 하루 평균 2만 명 이상의 관객을 모으며 사랑받았지만, 비슷한 시기에 개봉하는 할리우드 대작 영화에게 고스란히 자리를 내줘야 했다. 이에 조재현을 포함, 영화사 대표와 제작진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교차 상영의 문제점을 제기하며 “영화를 존엄사 시키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오늘’이나 ‘사물의 비밀’ 등의 작품을 스크린에 걸어주는 것은 대기업 배급망의 생색내기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교차 상영과 외곽지역에서 상영되는 외곽상영은 정말 문제가 많다. 죽은 상권에 물건을 가져다 놓고 사가라고 하는 격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영화는 문화이기 때문에 관객 수에 따라 상영시간과 상영관 수가 정해져서는 안 된다. 균등한 기회를 주기 위해 대기업 배급망에서 실제적인 움직임을 보여줘야 할 것이며, 문화를 판매한다는 논리보다는 전달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한지윤 기자 poodel@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