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Z 리뷰] 자유를 갈망하다 죽음과 키스한 황후 엘리자벳

[Ki-Z 리뷰] 자유를 갈망하다 죽음과 키스한 황후 엘리자벳

기사승인 2012-02-18 13:00:01

[쿠키 문화] “루케니 도대체 왜 황후 엘리자벳을 죽였습니까?” “내가 죽인 것이 아니라, 그녀가 죽음을 사랑했다”

막이 오르자마자 들려오는 이 굵직한 음성들의 짧은 대화는 뮤지컬 전체를 지배한다. 나이를 먹어 노환으로 죽은 것이 아닌,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한 황후. 그리고 살인범은 자신이 죽인 것이 아니라, 그녀가 죽음을 사랑했다고 말한다. 황후 엘리자벳의 삶이 그 누구보다도 불행했음을 짐작케 한다.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한다.

오스트리아 마지막 황후 엘리자베스 폰 비텔스바흐(1837~1898)는 우리에게 낯선 인물이다. 유럽의 역사를 꿰고 있는 사람이거나, 1990년대 등장한 비엔나 뮤지컬에 관심이 높은 관객이라면 모를까, 엘리자벳의 삶과 그로 인한 시대적인 변화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질적이다.

이는 제작사인 EMK 뮤지컬컴퍼니도 알고 있었다. EMK 부대표이자 배급을 맡은 떼아뜨로 김지원 대표는 ‘엘리자벳’ 국내 공연을 추진하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국내에서 ‘엘리자벳’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모차르트‘를 먼저 성공시켜한다고 원작자들을 설득했다. 모두에게 친숙한 인물인 ’모차르트‘를 성공적으로 올려 비엔나 뮤지컬에 대한 이해를 높인 다음에 ’엘라자벳‘의 음악을 소개하고, 우리에게 아직은 생소한 엘리자벳이라는 인물을 1~2년간 지속적으로 홍보한 후에 ’엘리자벳‘을 국내에 런칭해야 된다고 제안을 했다”고 말했다. 1992년 유럽 무대에 오른 후 독일, 체크 이탈리아 등 유럽어권에서 900만 명을 모은 작품이지만, 인물에 대한 낯선 느낌은 일종의 도전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9일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개막한 ‘엘리자벳’은 순식간에 관객들을 흡입했다. 화려한 캐스팅과 무대, 그리고 인상적인 고음파트의 곡들은 한국 관객들의 입맛을 제대로 만족시켜 줬다.

‘엘리자벳’의 배경은 19세기 몰락해가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다. 그러나 무대 위는 몰락이라는 단어와 어울리지 않게 화려함의 극치가 이어진다. 물론 그 기저에 깔려있는 음울함은 화려함과 절묘하게 어울려지면서, 뮤지컬의 무게가 가볍지 않음을 지속적으로 인식시켜 준다.

이 무게추를 맞추는 이들은 엄격한 궁 생활에서 자유분방함을 꿈꾸면서도 스스로의 삶의 방향을 잡지 못하는 엘리자벳과 사랑의 결과를 죽음으로 이끄는 ‘죽음’(토드)이다. 여기서 캐스팅의 파워를 느끼게 된다.

엘리자벳의 김선영과 옥주현, 죽음의 류정한, 송창의, 김준수는 무대를 화려하게 하기도, 어둡게 하기도 하면서 뮤지컬을 이끌고 간다. 여기에 이질감을 중화시키기 위해 능청스러운 해설자로 등장하는 루케니의 존재감은 단연 으뜸이다. 그리고 그 역을 최민철과 박은태가 맡았다는 것은 최고의 캐스팅이라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받혀주는 LED조명과 회전 무대, 3D 영상과, 삶과 죽음을 이어주는 듯한 거대한 다리 등 무대 위애서 펼쳐지는 모습들은 화려함의 극치다.

고음파트가 인상적인 삽입곡들은 이미 국내 뮤지컬 관객들에게 익숙해져 있다. ‘엘리자벳’이 2010년 국내에 소개된 ‘모차르트’의 극작가 미하엘 쿤체와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 콤비의 작품이니 당연하다.

물론 아쉬운 면도 존재한다. 화려함이 극치와 엘리자벳의 심적인 변화가 때때로 충돌한다. 엘리자벳의 분노, 슬픔, 절망 등이 무대의 화려함 때문에 이입 직전에 끊기기도 한다. 또 너무나 화려한 캐스팅이기에 어떤 조합으로 보느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린다.

주연 배우 중 눈에 띄는 것은 옥주현과 송창의의 발전이다. 그동안 종종 남자배우와 듀엣 장면에서 자신의 고음을 조절하지 못해, 상대 배우를 누르곤 하던 옥주현은 어느 새 상대 배우와 호흡을 맞출 줄 알게 되었고, ‘미녀는 괴로워’ ‘광화문 연가’ 등에서 불안한 음정을 선보여 ‘연기력만 뛰어난 뮤지컬 배우’라는 평을 받던 송창의는 눈에 띄게 향상된 가창력을 선보였다.

김선영, 옥주현, 류정한, 송창의, 김준수, 김수용, 박은태, 최민철, 윤영석, 민영기, 이정화, 이태원, 김승대, 전동석, 이승현 등이 무대에 오르는 ‘엘리자벳’은 오는 5월 13일까지 공연된다.

사진=EMK 뮤지컬컴퍼니

국민일보 쿠키뉴스 유명준 기자 neocross@kukimedia.co.kr / 트위터 @neocross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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