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실과 외교통상부 등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대법원 판결 후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에 관해 새롭게 마련된 정책이나 움직임은 사실상 전무하다. 이달 초 일부 언론에 보도된 범정부 차원의 피해자 지원 태스크포스(TF)는 현재 추진되지 않고 있다고 총리실 관계자가 밝혔다. 외교부 관계자는 “TF는 검토 단계일 뿐”이라고 말했다.
총리실과 외교부가 이처럼 소극적인 데는 지난달 대법원 판결이 형식적으로는 최종 판결이 아니라는 이유를 들고 있다. 대법원이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낸 사건이므로 파기환송심인 고법 판결을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지난달 여운택(89)씨 등 강제동원 피해자 8명이 미쓰비시 등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및 임금지급 청구 소송에서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내 사실상 원고승소 취지로 판결했다.
피해자 편에서 소송을 지원해온 최봉태 변호사는 “남은 재판에선 배상 금액이 결정될 뿐인데 무슨 결과를 더 기다리느냐”면서 “정부가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고 비판했다. 소송에서 이겼다고 해도 개인이 다른 나라의 대기업을 상대하는 일이어서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수적이라는 게 최 변호사의 설명이다.
정부가 일본과의 외교 마찰을 우려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피해자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의해 완전하게 최종적으로 해결된 문제”라는 입장이다. 우리 정부는 2005년 강제동원 피해자의 개인 청구권은 소멸된 것처럼 발표했다. 이와 관련, 총리실 관계자는 “정부의 기존 입장이 있고 외교 상대도 있어 어떻게 슬기롭게 문제를 풀지 고민 중”이라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정부의 무대책과 ‘시간 끌기’의 배경에는 청와대의 의지 부족이 있다는 시각도 있다. 피해자 측의 한 관계자는 “외교부가 적극적으로 여러 제안을 하고 있지만 청와대가 미온적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생존 피해자는 거의 모두 90세 안팎의 고령이어서 정부가 시간을 끌수록 강제동원 배상이 흐지부지될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지난 21일 성명을 내고 “정부는 피해자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문제를 매듭지을 수 있도록 외교적 역량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