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쿠키미디어는 지난 17일 ‘의약품 재분류 무엇인가?’를 주제로 아홉 번째 ‘고품격 건강사회 만들기 토론회’를 개최했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보다 안전하고 합리적인 의약품 사용을 위해 의약품 재분류 작업을 실시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재분류 결과를 두고 의료계와 약계, 소비자의 불만이 이어지고 있고 특히 피임약의 경우 부작용과 오남용 우려 등으로 각각의 입장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이번 토론회는 국민의 안전한 의약품 복용과 향후 의약품 상시 재분류 체계를 위해 해결돼야 할 과제를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참석자
김성호 (식품의약품안전청 의약품안전정책과장)
정승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보건의료위원)
리병도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부회장)
이재호 (대한의사협회 의무이사)
최안나 (진정으로산부인과를걱정하는의사들모임 대변인)
◇일시 : 2012년 7월 17일(화) 14:00
◇진행
원미연 쿠키건강TV 아나운서
◇방송
2012년 7월 24일(화) 15:00∼16:20
[사진설명]=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성호 과장, 정승준 위원, 리병도 부회장, 최안나 대변인, 이재호 의무이사
-10년 만에 의약품 재분류가 실시됐다. 이유는 무엇인가?
◆김성호=현행 분류는 의약품 허가 당시 제출된 임상 시험 자료가 기준이다. 의약품 허가 이후에 약의 사용 경험이나 부작용 등을 토대로 과학 기술의 발전, 환경 변화 등에 맞도록 재검토할 필요가 있었다. 국민들이 의약품을 안전하게 복용할 수 있도록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을 재분류한 것으로 과학적 기준에 따른 재분류는 2000년 이후 처음이다.
-정부의 의약품 재분류 필요성에는 공감하는가?
◆정승준=의약품 재분류는 필요하다. 특히 상시재분류가 가능해지면서 요청에 의한 분류를 할 수 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다만 상시재분류가 이해 집단의 소모적인 논쟁을 통한 것이 아니라 객관적 자료가 쌓여 국민을 위한 분류 과정이 돼야 한다.
◆최안나=식약청에서 뜻 깊은 작업을 했다. 그러나 피임약 문제처럼 실제 의료 현장에서 우려되는 문제를 앞으로 어떻게 반영할지에 대한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재분류 의약품을 평가하는 기준은?
◆김성호=국내에 허가된 모든 의약품을 대상으로 3만9254품목을 분류했다. 과학적인 재분류를 위해 약사법을 기준으로 15단계의 세부 분류 기준을 마련했다. 약의 투여경로, 효능·효과, 습관성, 의존성, 외국 현황 등을 기준으로 전문의약품을 먼저 분류했다. 아직 부작용 정보가 충분하지 않은 품목은 현 체제를 유지했다.
-식약청의 분류 기준이 공정하다고 보는가?
◆이재호=의약품 분류의 세부 기준이 마련되지 않아 합리적인 재분류가 어려웠다. 유권해석에 따라 이헌령비헌령(耳懸鈴鼻懸鈴) 식으로 돼서는 곤란하다. 의약품 재분류가 이해당사자들의 눈치보기식 재분류가 아니라 국민을 가장 우선으로 두고 분류해야 국민에게 설득력을 얻는다.
◆최안나=분류 기준에 임산부 금기 약물이 빠져 있다. 가임기 여성들이 먹으면 위험한 약을 식약청에서 등급으로 분류하고 있으면서 이번 의약품 재분류 기준에는 빠져 있다. 기준에 임산부 금기 약물을 추가해야 한다.
◆정승준=기준은 타당했다고 본다. 하지만 의약품 분류의 절대적 기준이 돼서는 위험하다.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수준에서 끝나야 하고, 사회·문화적인 부분, 경제와 보건 문제까지도 함께 논의해 최종 결정을 해야 한다.
-일반의약품과 전문의약품의 재분류는 결국 소비자의 선택권과도 관계가 있다. 약국에서 쉽게 구입했던 약이 의사 처방이 필요한 약이 되면 소비자가 불편해질 것 같은데?
◆이재호=일반의약품이 전문의약품으로 됐을 때 볼멘소리가 나올 수는 있다. 그러나 의약품 부작용은 단기간에 나타나기도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체내에 축적되거나 약이 배출되는 장기인 신장, 간, 장 등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의사의 처방을 받아 선별적으로 의약품을 복용하는 것이 국민 건강에 좋다. 성숙된 국민 의식이 필요하다.
◆정승준=소비자들이 일반의약품에서 전문의약품으로 전환하면 불편함은 있겠지만 안전성이라는 큰 측면에서 볼 때 불편을 감수할 수 있다.
-의약품 재분류에서 피임약이 유독 뜨거운 감자다. 용어에 대한 논란도 많은데 사전피임약과 긴급피임약의 차이점은?
◆최안나=사전피임약, 긴급피임약은 식약청에서 만든 용어이다. 경구피임약, 응급피임약이 맞다. 사후피임약이라는 용어는 마치 사전 피임을 대체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는데 그것은 아니다. 빨리 먹기만 하면 피임이 되는 약이 아닌 응급한 상황에서 쓰이는 피임약이다. 경구피임약은 배란이 시작되는 날부터 매일 먹어서 난포 성장을 방해하는 약이다. 응급피임약은 성폭행 같은 응급 상황에 제한적인 상황에 써야 한다. 사후나 긴급의 개념이 아니다.
◆김성호=식약청은 긴급피임약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는데 사전피임약인 경구피임약은 제대로 된 피임약이고, 긴급피임약은 불가피한 성관계 후에 원치 않는 임신에 대처하는 차원에서 긴급히 써야 한다는 의미다.
-사전피임약은 일반의약품이었다. 전문의약품으로 바뀐 이유는?
◆김성호=사전피임약은 피임효과를 위해 20일 복용, 7일 휴약을 반복해야 한다. 장기간 사용하기 때문에 정기적인 의사 검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여성 호르몬 수치에 영향을 주고 드물지만 혈전증 같은 부작용도 나타날 수 있다. 투여 금기나 신중투여 대상이 많아 과학적 기준으로 전문의약품으로 관리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일부에서는 반대하고 있다. 반대의 이유는?
◆리병도=분류 기준의 핵심은 부작용인데 그런 점에서는 사전피임약은 전문의약품이 원칙적으로는 맞다. 하지만 여성들의 출산 선택권, 문화적인 부분을 고려했을 때는 반대한다. 사회 합의가 사전에 이뤄졌어야 했다.
◆정승준=많은 약이 전환됐지만 유독 피임약만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다른 약은 환자 대상이지만 피임약은 건강한 여성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잠재적 수요층까지 다 해당된다. 단순 약물로서의 작용뿐만 아니라 약으로 인해 본인들이 누릴 수 있는 권리까지 침해된다.
-반면 긴급피임약은 전문의약품에서 일반의약품으로 전환이 됐다. 이유는?
◆김성호=긴급피임약은 사전피임약처럼 정기적으로 먹는 약이 아니다. 임상시험자료나 논문자료를 봐도 사전피임제는 에스트로겐이 함유돼 있어 심혈관에 영향을 미치는데 긴급피임약은 에스트로겐이 없어 혈전증 같은 부작용이 거의 나타나지 않아 일반의약품으로 분류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앞서 사전피임약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는 부분이다. 긴급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은 의료계는 반대, 약계는 찬성, 시민단체는 일부 찬성 등의 의견을 보이는데?
◆리병도=여성의 관점에서 볼 때 찬성이다. 선택권이 존중돼야 한다.
◆정승준=사후피임약은 원치 않은 임신에 대한 개인 선택이고 접근성이나 편의성이 기본적으로 제공돼야 하는 것이다. 국가는 적절한 의료 환경을 제공하면 된다. 개인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 부작용과 오남용은 제도적으로 제한을 둘 수 있다.
◆이재호=반대하는 입장이다. 피임약의 본래 목적은 원치 않는 임신을 막아줘야 하는 것인데 응급피임약은 피임 실패율이 15~40%다. 평균 20%라도 해도 5명 중 1명은 결국 원치 않는 임신으로 인한 낙태로 이어진다. 이 여성의 건강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성 문화의 문란을 가져올 수 있고 외국에서도 이미 성병 문제가 생기고 있다.
◆김성호=기본적으로 낙태와 의약품 분류는 사회 전반의 문화적 행태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지, 긴급피임약이 일반의약품이 됐다고 해서 낙태율이 증가했다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성병문제도 직접적으로 연관시킬 순 없다. 피임 교육에 대한 문제로 풀어야 한다. 긴급피임약은 약국 복약지도나 매뉴얼 제작, 설명서 제공 등의 보완책이 있고 청소년 연령제한도 검토하고 있다.
-피임약이 유독 논란이 되고 있지만 다른 약도 재분류 품목이 있다. 어린이용 스코폴라민 패취제가 전문의약품으로 전환되는데 성인용은 일반의약품으로 둬도 문제가 없나?
◆김성호=일명 키미테로 불리는 스코폴라민 패취제의 부작용은 떼어내면 사라지는 일시적인 것이다. 성인이 경우 대처능력이 충분하다. 주로 멀미에 사용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유익성이 있다. 어린이는 대처능력이 부족하고 인지를 잘 못할 수 있기 때문에 전문의약품으로 전환해 관리하려는 것이다.
◆이재호=스코폴라민 부착제는 올해 상반기 소비자고발센터에 부작용이 13건 접수됐다. 대부분 붙이고 나서 정신착란, 방향감각 상실, 기억력 상실 등으로 응급실을 방문했다. 외국은 1.5㎎을 전문의약품으로 분류하고 있다. 소아용은 판매도 안 되는데 우리나라만 0.75㎎을 소아용으로 판매하고 있다. 전문의약품 분류가 시급한 약이다.
◆정승준=스코폴라민제제 말고도 하이드로코르티손크림도 일반의약품이 됐다. 스테로이드제제는 오남용 우려가 높고 잘못된 적응증으로 피부에 바르면 병이 악화될 수 있다. 일반의약품으로 된 것은 문제가 있다.
◆리병도=스테로이드제제나 키미테의 부작용 보고가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여론 수렴이나 전문가 논의를 거쳐 재분류 판단을 조금 미루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의약품 재분류 과정을 봤을 때 향후 재분류에서 개선돼야 할 점은 무엇인가?
◆정승준=결국은 국민을 중심으로 한 논의가 돼야 한다. 국민의 권리는 누구한테 보호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국민이 자원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게끔 정부가 노력해야 한다.
◆리병도=상시분류체계로 가면 더 많은 문제들이 생기고 피임약 문제처럼 사회 각 계에서 의견이 많을 것이다. 근거 중심에 기준을 두고 각 계 각층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정책 목표를 정해 정부가 뚝심 있게 진행하는 모습을 보여 달라. 정부에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야 한다.
◆최안나=경구피임약이 일반의약품이 된다면 전문의약품이 돼야 마땅한 약은 없다. 경구피임약이 전문약이 안 되면 의약분업 할 필요없다. 폐지해야 한다. 대신 국민들이 병원 이용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보험으로 지정해야 한다. 이번 기회에 임부 금기약, 가임기 여성이 먹지 않아야 하는 약을 재분류 기준에 넣어서 다음번 재분류에 반영해 달라.
◆이재호=10년 만에 전면적인 의약품 재분류가 이뤄졌다. 향후 상시분류, 정기분류가 이뤄질 때는 근거중심이어야 한다. 처방한 의사나 조제한 약사, 복용한 국민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세부 분류기준이 나와야 하고 기준은 전문가들의 합의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 특히 초등 분류 단계에서부터 의사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김성호=이번 의약품 재분류는 과학적 기준에 따라서 최초로 실시됐다. 이번 기준을 토대로 국가 약물 감시 시스템을 철저히 운영해서 국내 부작용 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정리=김성지 쿠키건강 기자 ohappy@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