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딜 갑니까” 청와대에 갇힌 청와대 출입 기자들

“어딜 갑니까” 청와대에 갇힌 청와대 출입 기자들

기사승인 2012-08-31 20:35:01

[쿠키 정치] 광화문에서 북쪽 방향에 있는 청와대 본관. 그 오른쪽 끝에 출입기자들의 상주 공간, 춘추관이 있다. 이곳에서 기자들은 매일 경호원의 안내를 받아 본관 쪽으로 들어가는 관광객들을 보면서 한없이 부럽기만 하다. ‘기자 출입금지’. 노무현 정부 때부터 지금까지 춘추관에서 본관으로 통하는 문(門)은 유독 언론들에만 굳게 닫혀 있다. ‘잃어버린 10년’인 셈이다. 춘추관에 앉아서 청와대가 알려주는 것만 취재하고 써야 한다. 왜 청와대는 이들을 ‘반쪽짜리 기자’로 만든 걸까.

오전 9시 서울 종로구 삼청동 청와대 춘추관 앞뜰. 아스팔트로 덮인 한 마당 가운데 조그만 정원이 돋보이는 이곳에는 벌써부터 휴대전화 통화를 하며 서성거리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하나같이 심각한 얼굴들이다. 누군가는 통화가 안돼 한숨을 내지르고, 다른 곳에서는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춘추관으로 출근한 기자들이다.

100명에 이르는 상주(常住) 기자들이 청와대에서 갈 수 있도록 허락된 유일한 공간은 부스가 배치된 기자실과 화장실을 제외하면, 200평 정도 되는 춘추관 아스팔트 마당이 전부다. 언론사마다 출입기자들의 면면(面面)은 바뀌었지만 이 풍경은 10년째 거의 변함이 없다.

오전 10시30분쯤, 청와대 대변인이 아침에 열린 대통령 주재 회의 브리핑을 하러 왔다. “이명박 대통령께서는 ‘태풍 볼라벤 피해를 최소화하라’고 독려하셨습니다.” 대변인은 짤막한 설명을 마치고 브리핑룸 밖으로 나왔다. 기자들은 뒤를 졸졸 따라가며 이런저런 질문을 던진다. 회의보다 훨씬 더 넓은 범위의 궁금증이 폭발한다. “그건 잘 모르겠는데.” “그건 그렇지 않을까요.” …. 대변인은 몇 마디 대답을 남기고 본관으로 통하는 춘추관 출입구로 향한다. 뒷모습을 바라보는 기자들의 눈길엔 아쉬움이 묻어 있다.

오후 5시. 이 시각까지 대변인이 본관으로 올라간 뒤 춘추관을 찾아온 비서관급 이상 청와대 참모는 아무도 없다. 하지만 기자들은 이미 몇 꼭지의 기사를 썼다. 그동안 수없이 전화를 돌렸고 몇 마디의 말을 종합하고 추론하고 분석한 것이다.

저녁 6시. 어렵게 춘추관의 하루 일과가 끝을 보인다. 또 아스팔트 마당에서 기자들이 서성인다. 각자 휴대전화를 들고 내일의 기사를 찾고 있는 것이다. 멀리서 보면 영락없이 하이에나다. 어딘가 있을 먹잇감을 찾아 후각 대신 휴대전화로 킁킁거리는 하이에나 말이다.

‘기자들의 청와대 본관 출입금지’는 우파 정권인 이명박 정부가 좌파 정권인 노무현 정부로부터 유일하게 계승한 정책이나 다름없다. 경제에서 남북관계, 대외정책에 이르기까지 거의 정반대 노선을 걸었지만 이 일에 관한 한 두 정부의 행보는 똑같다.

노무현 정부는 2003년 집권하자마자 기존 기자실 제도를 없애고 브리핑룸 체제로 전환했다. 그리고 청와대를 비롯한 모든 정부 부처 사무실에 ‘기자 출입금지’를 선언했고 하루아침에 기자들은 취재할 곳을 잃었다.

처음으로 청와대 본관의 비서관실 접근을 제한했던 김대중 정부도 하루에 두번은 출입을 허용했다. 시간을 정해놓고 기자들은 본관을 찾아가 직접 수석비서관들을 만났다. 당초 김대중 정권은 이전 정부에서 무제한 허용됐던 기자들의 청와대 본관 출입을 제한하려고 했다. 이를 전해들은 기자들이 대통령에게 직접 항의하기도 했다. 제한적이나마 본관 출입을 사수한 것이다.

이처럼 대한민국 최고의 권부(權府)는 시대가 군사독재에서 민주주의로 발전하는 사이에 거꾸로 국민들과의 언로를 점점 더 막아온 셈이다. 작금의 춘추관은 기자들에게 ‘외딴섬’이 돼 버렸다.

그럼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한 청와대 참모는 31일 “우리도 처음엔 허용을 심각하게 검토했었다. 그런데 100명이나 되는 기자들이 수시로 본관을 오가면 여러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항상 국가 기밀이 쌓이는 곳에서 통제의 방법이 필요하다는 전(前) 정부의 고민을 이해하게 된 것”이라고 털어놨다.

하지만 언론학자들은 “노무현 정부의 출입 제한 정책이 얼마나 효율적이었는지에 대해 현 정부도 동의를 표한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보의 ‘개방’보다 ‘폐쇄와 통제’가 권력의 속성에 더 맞는다는 얘기다. 하지만 청와대는 기자들의 출입 제한이 국민들과의 소통을 가로막아 궁극적으로 잃는 게 더 많다는 사실은 애써 외면하는 눈치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
김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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