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친일파 1200명, 일제 전범기업 투자 첫 확인

[단독] 친일파 1200명, 일제 전범기업 투자 첫 확인

기사승인 2012-10-23 08:35:01

1회 : 또 다른 공탁금-민초들이 강제동원으로 신음할 때 그들은 주식을 샀다

일제 강점기 친일파를 비롯한 조선인 1200여명이 수천억원대 일본 ‘전범(戰犯) 기업’ 주식을 사들였던 사실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이들이 주식을 매입한 기업은 미쓰이 미쓰비시 스미토모 등으로 수많은 조선인이 강제동원돼 임금도 못 받고 노역에 시달렸던 곳이다.

주식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받지 못한 임금과 함께 일본 도쿄은행에 공탁돼 있다. 조선인 주주 중엔 국내 재벌가와 명문 사학 재단 인사도 포함돼 있다. 식민지 민초(民草)들이 일본의 탄광이나 공장에서 착취당하는 동안 해당 기업 주식을 사들여 치부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 전범 기업들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연합군 총사령부의 요구에 따라 강제동원 조선인 노무자 임금을 도쿄은행에 공탁했다. 일본 정부는 2010년 4월 공탁금 3517만엔(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8370억원)의 내역을 우리 정부에 제공했다. 국민일보와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는 22일 새누리당 이명수 의원을 통해 ‘조선인 노무자 공탁 기록’을 입수했다.

분석 결과 공탁금 3517만엔 중 노무자 임금은 1046만엔(2489억원)에 불과했다. 전체 3분의 2가 넘는 2471만엔(5881억원)은 강제동원 피해와 무관한 조선인 주주들의 주식 값이었다. 최초로 공개된 전범 기업 조선인 주주 명단에는 이완용의 외조카 한상룡 등 친일파 인사와 함께 두산그룹 창립자 박승직씨 등 재벌가 인사도 포함돼 있었다. 고려대 설립자 김성수(55년 사망)씨의 동생 연수(79년 사망)씨가 운영한 삼양사, 민족기업으로 알려진 화신백화점 등 법인도 전범 기업 주식을 대량 매입했다.

공탁 기록에 나타난 조선인 개인 주주는 1204명(기업·단체 등 법인 주주 138곳 제외)이다. 1인당 평균 7444엔(1억7716만원)의 공탁금을 소유하고 있다. 반면 이 기록에 명시된 강제동원 노무자 6만2361명에게는 1인당 평균 167엔(397만원)이 돌아갈 뿐이다. 조선인 주주들은 일본이 토지 수탈을 위해 설립한 조선흥업사, 전쟁 자금 조달을 위한 조선보험주식회사 등 식민지 수탈 기업 주식도 매입했다.

40년대 80㎏ 쌀 한 가마니는 22엔이었다. 조선인 주주들이 평균 7000엔 이상 일본 기업 주식을 매입한 건 일본의 식민지배와 전쟁 수행에 협조했다는 의미라고 황민호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대표(숭실대 교수)은 말했다. 황 대표는 “조선인 주주들이 산 주식은 대부분 일제 군수기업이나 금융기업 주식”이라며 “자발적 부일(附日) 행위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친일반민족 행위자 재산의 국가 귀속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이 주식 대금은 국고환수 대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를 102만명으로 추산한다. 그 가운데 5만∼6만명은 가혹한 작업 도중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 Key Word - 공탁금

일본은 1938년 국가총동원법을 공포하고 39∼45년 조선인들을 일본 탄광과 군수공장 등에 강제 동원했다. 이들은 임금의 대부분을 각종 명목으로 차감당해 받지 못했다. 일본은 패전 후 임금을 도쿄은행에 공탁했다. 한·일 양국은 65년 청구권협정에서 일본의 3억 달러 무상원조로 강제동원 피해자의 공탁금 청구권이 소멸됐다는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지난 5월 대법원은 한·일 청구권협정과 무관하게 강제동원 피해자의 개인 청구권은 살아 있다고 판결했다.

특별취재팀= 국민일보 쿠키뉴스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 이성규 기자 zhbago@kmib.co.kr,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김상기 기자
proc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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