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배우 이경영. 대중의 나이에 따라 이 배우를 인식하는 것은 다르다. 지금 20대 중반 밑의 대중들에게는 낯선 배우로, 20대 중반부터 30대 후반까지는 오해를 지닌 ‘문제성 인물’로, 그러나 30대 후반의 대중들에게는 지금 웬만한 톱스타 저리가라 할 정도로 뛰어난 연기력을 지닌 배우로 기억한다.
그러나 최근 이경영의 행보는 이 세 가지 인식을, 다시 과거로 돌려 하나로 통합시킨다. 그 어느 배우보다 열정적이고 변화무쌍하며, 영화계의 든든한 축임을 확인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영화 ‘남영동 1985’를 통해 뚜렷하게 드러났다.
고(故) 김근태 의원의 자전적 수기를 바탕으로 한 ‘남영동 1985’는 그가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가 끔찍한 고초를 당해야 했던 22일 간의 기록을 담아낸 영화로, 스크린 가득히 끔찍한 고문 장면을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어떻게 보면 영화에 대해 “반드시 봐야하는 영화”라고 말하면서도 선뜻 추천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이경영이 연기한 고문기술자 이두한이 있다.
최근 영화 홍보차 오랜만에 언론과 인터뷰를 하는 이경영을 만난 자리에서도 솔직히 털어놨다. “추천하기 어렵다”고.
“일반 시사회 반응을 지켜 본 적이 있는데 20대 친구들이 공감하고 봐서 고무적이었다. 감독님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진정성이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꼭 봐야하는 영화라는 인식이 자리 잡은 것 같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정지영 감독님은 항상 “여러분 힘드셨죠. 여러분은 1시간50분 동안 힘드셨겠지만, 배우들은 두 달 힘들었고, 고문 피해자들은 평생을 고통스러워해요. 그렇다면 이쯤은 가치 있는 고통의 시간 아닐까요”라고 말씀하신다. 이제는 기자님도 ‘추천하기 어렵다’를 빼고, ‘꼭 봐야 하는 영화’라는 점을 강조해 주셨으면 한다.(웃음)”
영화가 주는 섬뜩함은 ‘일상적 대화’에서 느껴진다. 대공분실에서 근무(?)를 하며 고문을 행하는 사람들도 가정이 있고, 개인사가 있는 사람들이다. 무서운 것은 김종태(박원상)를 고문하면서도 이들은 어제 한 회식 이야기를 하고, 마누라 이야기를 하고 진급 이야기를 한다. 한 개인에 대한 폭력과 어울리지 않는 평범한 일상이 한 공간에서 보여진다.
“돌아가신 김근태 의원님도 고문이 두렵기는 했지만 같은 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일임에도 자신하고 무관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들에 대한 고통이 더 견디기가 힘들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도 가장 섬뜩한 영화적 장치라고 생각한다. 수기에 봐도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는 여자 아나운서의 멘트, 야구 중계 등이 그렇다. 고문을 당하는 피해자는 라디오 속 세상과 자신이 단절돼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데 자신은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영화는 거의 모든 장면이 고문과 고문을 행하기 직전의 상황을 그린다. 영화 중반을 지나게 되면, 고문 도구인 ‘칠성판 들여와’라는 말 한 마디에 관객들마저 소름을 끼치게 만든다. 영화를 본 일부 관객들은 이 장면에서 눈을 감거나, 탄식부터 나온다고 말할 정도다. 관객들이 받고 있는 아픔. 고문을 직접 행한 이경영의 기분이 궁금해지는 이유다.
“고문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야기를 그리다보니, 리허설을 할 수도 없었다. 현장에서 ‘적당히’는 통하지 않고, 원하는 장면을 한 번에 뽑아내야 했다. 만일 다시 찍게 되면 원상이가 더 고통스럽기 때문에 한번에 가기 위해 더 무자비하게 했다. 물론 ‘너무 고통스러우면 신호를 보내라’ 라고 말을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신호를 고문에 반응하는 것으로 보고 더 무자비하게 했다.(웃음) 고문 피해자들이 갖고 있는 정신적 고통을 제대로 표현해야지 고문이 한 인간의 영혼을 파괴하는지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에 앞서도 말했지만 ‘적당히’는 통하지 않았다. 연기를 하는 동안은 엄청난 집중력을 필요로 했고, 컷이 들리는 순간 그것을 바로 놔야 하는 상황을 반복해야 했다. 그래서 일부러 고문 장면을 연기한 후에는 배우들 모두가 다른 이야기로 잡담을 했다. 그 감정을 계속 가져갈 수 없었다. 촬영이 없는 순간에도 집중력을 가지고 가면 정신이 돌아버릴 만큼 힘든 현장이었다. 나를 포함한 고문 가해자를 연기한 배우들은 촬영이 끝나고 숙소에 돌아가면 왜 피곤한지 모를 정도로 푹 쓰러진 적이 많았다. 배우들이 이런 감정이었는데 감독님은 아마 더 했을 것이다. 감독님은 가해자, 피해자 모두의 입장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이두한의 모델은 고문기술자 이근안이다. 그리고 박원상이 연기한 김종태의 모델은 김근태 의원이다. 1985년 이근안은 김근태 의원을 잔인하게 고문했고, 그 모습이 27년 뒤에 이경영이 박원상을 고문하는 ‘연기’로 스크린을 채웠다. 연기지만, 고문이다. 이경영은 박원상에게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미안하지는 않았을까.
“딱 한번 있었다.(웃음) 열심히 고문을 하고 있는데 원상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을 보는 데 너무 애처로웠다. ‘저 좀 살려주세요’라는 강아지 눈빛이었다. 만일 그런 마음으로 촬영에 임하면 서로 힘들어지니까 사사로운 감정은 안 가지려고 했다. 그래서 최대한 그를 고문 대상자로만 보려고 애썼다. 이근안이 애국심이나 사명감이라 믿으며 고문을 행하 듯이 말이다.”
그의 연기는 김근태 의원의 아내인 민주통합당 인재근 의원에게 여러 복잡한 감정을 들게 만들었다.
“부산에서 시사회가 열렸는데, 인재근 의원이 오셔서 영화를 관람하셨다. 그분이 ‘명계남씨가 고문할 때는 저러다 죽지 걱정됐는데, 제가 나오면 이상하게 안심(?)이 됐다’고 하시더라. ‘저렇게 정교한 기술로 고문했기에 그나마 우리 남편이 안 죽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고 하셨다. 아이러니한 상황이라 마음이 아팠다. 그날 그런 말씀하시면서 정말 많이 우셨다. 어제는 국회시사회가 있었는데 아드님이 와서 봤다. 집에 가서도 많이 울었다고 한다. 그런 얘기들을 듣고 있노라면 마음을 아무리 굳게 다잡아도 먹먹해지고 미안해진다.
난 고문 가해자 역할을 했을 뿐 고문 가해자는 아니었다. 연기를 하면서 든 죄책감은 그 동안 민주주의에 대해 너무 소홀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내가 연기를 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가슴이 먹먹하고 아파서 진정이 안 된다. 이런 영화가 다시는 만들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영화를 찍는 동안, 그리고 영화를 찍은 후에도 영화가 주는 후유증은 강하다. 본인 말대로 ‘고문 가해자’ 연기를 했지, ‘고문 가해자’가 아니다. 이경영의 연기 내공을 봤을 때, 분명 캐스팅 제의가 들어올 때나,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운 이 역을 그는 왜 선택했을까.
“배우가 작품을 선택할 때 내가 이 캐릭터를 맡아 감수해야 할 고통은 나중 문제다. 캐릭터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지 그게 더 중요하다.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느낀 고통보다 직접 연기를 했을 때 오는 고통이 더 크기는 하지만, 또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선다고 하더라도 주저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만일 10년 전이었다면 김종태 역이라도 수락했을 것 같다. 캐릭터가 얼마나 매력적이냐가 중요하니까. 김종태나 이두한이나 둘 다 매력적이어서, 이 둘을 놓고도 안 하겠다고 하는 배우들이 있을까 싶다.”
고문기술자인 이두한이 매력적이다? 배우가 캐릭터를 보는 것과 관객이 캐릭터를 보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겠지만, 단순한 악역이 아닌 현실의 아역을 연기하는데 있어서 이 부분은 의아할 수 있었다.
“모델로 삼은 이근안 경감을 생각하지 않고, 배우로 캐릭터만 놓고 봤을 때도 쉽게 만날 수 없는 배역이었다. 그리고 ‘휘파람’이라는 기가 막힌 장치에도 끌렸다. (배우가) 연기 생활을 하면서 그런 장치가 있는 캐릭터를 만나는 건 정말 행운이다. 촬영이 들어가기 전 박원상이 술자리에서 자신이 이두한을 연기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민주주의를 위해서 고귀하게 살다 간 김근태 의원님과 우선 외형이 다르고, 그 분의 가치 또한 훼손시킬 것 같은 염려 때문에 한참 망설였던 것으로 안다. 그의 걱정과 달리 내가 본 박원상이라는 배우는 투박한 정직함과 진정성을 가진 연기자였다. 김종태 역과 너무 잘 어울렸다고 생각한다.”
이경영은 ‘남영동 1985’뿐 아니라, 이전에는 ‘부러진 화살’, 이후에는 ‘26년’에 출연했다. 세 영화 모두 사회성 짙은 무거운 영화다. 배우로서의 욕심일까, 아니면 어떤 의도가 있었을까.
“그냥 그때 때맞춰 내 품에 들어온 작품이 그랬을 뿐이다. 제게 맞았던 작품들이 공교롭게도 사회성 짙은 작품들이었다. 이번엔 한 주 차이로 ‘남영동 1985’와 ‘26년’이 각각 개봉한다. 두 작품에 출연했다고 해서 제가 정치성향을 띄지 않았나 바라보는 시각은 합당하지 못하다. 배우에게도 작품을 선택하는 자유권이란 게 있다. 그런 선택을 왜 이분법적인 잣대로 봐야 하나. 한 마디 더 하자면, 배우들의 성향 때문에 방송 제재가 가해지는 자체가 ‘후퇴’라고 본다. 배우들은 권력의 하수인이 아니다.”
영화에서 백미는 ‘휘파람’이다. 이두한이 김종태를 고문할 때 여유있게 휘파람으로 ‘클레멘타인’을 부른다. 마지막 장면에서 이 휘파람 소리는 보는 이로 하여금 소름을 끼치게 만든다. 휘파람 소리 하나가 영화 전체를 장악하고, 관객들의 호흡 소리를 다르게 한다는 것 자체가 잊을 수 없을 정도의 강렬함이다.
“그 장면은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부터 나 역시 소름이 끼쳤던 부분이다. 촬영이 들어가기 전 면회실 장면이 진짜 백미라고 감독님에게 말했을 정도다. 이두한과 김종태가 마주 앉은 장면이 개인적으로는 좀 더 길게 갔으면 했었다. 그리고 용서를 구할 때 어떻게 가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그때 감독님이 ‘그때만은 진심이 아니었을까’라는 말을 듣고, ‘정말로 용서를 구하는데, 표정은 모호하게 가자’라고 생각했다. ‘용서했을까’라는 판단을 관객들에게 던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이경영은 이두한과 이경영 그리고 1984년과 2012년을 계속 오갔다. 고문기술자를 ‘연기’했지만 죄책감을 표현했고, 고문이라는 시대의 잘못을 질책하며 이근안을 평가했지만, 배우로서는 ‘매력’이라는 단어를 붙였다. 두 인물과 두 시대를 오간 이경영이 ‘용서’를 어떻게 생각할까.
“고문 피해자들 중에는 용서를 한 이들은 자기가 못할 것 같으니까 억지 비슷하게 한 사람들이 많다. 대다수 고문 가해자들을 용서하지 않는다. 실제 김 의원님도 용서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질책할 정도로 힘들어했던 것으로 안다. 그래서 목사님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그건 당신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신의 몫이다’라는 답을 들었고, 그 후에야 용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조금 자유로워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 생각도 마찬가지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유명준 기자 neocross@kukimedia.co.kr / 사진=박효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