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정치와 권력에 휩쓸린 슬픈 황태자의 사랑 이야기

[리뷰] 정치와 권력에 휩쓸린 슬픈 황태자의 사랑 이야기

기사승인 2012-11-29 10:18:01

[쿠키 문화] 19세기 유럽을 이야기하는 뮤지컬들의 대체적인 모양새는 사랑이라는 큰 틀을 제시하고, 그 안에 정치와 인간 군상들을 집어넣는 다는 것이다. 이 조율이 얼마나 제대로 이뤄지냐에 따라 뮤지컬의 성공여부가 결정된다.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는 두 남녀가 보여준 세기의 사랑을 그렸다. 19세기 정치적 혼란기에 황태자 루돌프는 왕과 다른 급진적인 사회개혁을 꿈꾼다. 그는 자신이 가진 것을 지키거나 누리려는 것 아닌, 내려놓으려 한다. 그리고 이런 황태자의 모습에 가난한 집안의 딸 마리 베체라는 매혹된다. 그리고 이런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신념으로 만난 남녀는 사랑으로까지 감정의 영역을 확대시킨다.

여타 19세기 유럽을 그린 대다수의 작품들처럼 이 뮤지컬 역시 해피엔딩이 아님을 관객들은 쉽게 짐작한다. 무대 위에 장식된 톱니바퀴 시계가 파국을 향해 천천히 돌아가는 것은 보여준다는 사람도 있지만, 그보다는 황태자와 마리의 성향이나 감정표출 자체가 파국으로 향해가는 속도감을 높여 브레이크 없는 질주처럼 보인다.

운명에 도전했다가 처절하게 사라지는 인간의 이야기는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서양의 전통적인 비극이다. ‘황태자 루돌프’는 이 ‘공식’에 러브스토리를 정교하게 짜 맞춘다. 여기에 아름답고 웅장한 음악과 화려한 무대, 우아한 암무를 결합해 관객들의 몰입도를 높인다.

여기에서 앞서 거론한 사랑이라는 주제와 이를 둘러싼 내용들의 절묘한 결합이 등장한다. 황태자는 이런저런 이유로 개혁을 향한 의지가 벽에 막히며 점차 의지를 잃어가지만, 이런 황태자에게 불을 붙이는 것은 사랑하는 마리다. ‘왜’ 개혁을 해야 하는 주체가 황태자 스스로였던 것에서, 이제는 마리의 의지로 주체가 바뀐 것이다. 실제로 황태자와 마리의 사랑이 애초 시작되지 않거나, 결실을 맺었다면 세계 제1차대전이 일어나지도 않았고, 세계는 많이 변했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만약에’라는 역사 인식은 역사를 논한데 있어 생산적이지 못하지만, 뮤지컬은 이 ‘만약에’를 떠올리게 만든다.

때문에 (사전에 유럽 역사에 지식이 있든 없든) 관객들은 당대의 정치적 변화가 한쌍의 남녀의 사랑과 깊은 관계가 있음을 자연스럽게 인지하게 되며, 이들의 파국적 결말 역시 더욱 비극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단지 개인의 슬픈 사랑이 아니라, 국가, 정치, 신분이라는 거대한 틀에 눌린 비극적인 사랑이기 때문이다.

‘황태자 루돌프’는 국내 팬들에게 친숙한 브로드웨이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의 유럽 데뷔작이다. 국내에서는 올해 초연했지만, 유럽에서는 올해 초 국내 초연된 ‘엘리자벳’의 제작사 비엔나극장협회(VBW)가 2006년 초연한 작품이다.

안재욱, 임태경, 박은태(루돌프), 옥주현, 최유하, 김보경(마리 베체라) 등 트리플 캐스팅으로 진행되며, 2013년 1월 27일까지 서울 충무아트홀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유명준 기자 neocross@kukimedia.co.kr / 트위터 @neocross96
유명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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