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문화] 조선 시대 재산 상속에서 남녀 차별이 어떻게 시작됐는지를 보여주는 분재기(分財記·재산상속문서)가 공개됐다.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 장서각은 4일 한국학기초자료사업 워크숍에서 조선 후기 소론의 영수이자 대학자였던 명재(明齋) 윤증(尹拯·1629~1714)의 아버지 윤선거(尹宣擧·1610~1669) 남매의 분재기인 '윤선거 남매 화회문기(尹宣擧 男妹 和會文記)'를 공개했다.
가로 길이가 무려 6m가 넘는 이 분재기(가로 6m15.6cm, 세로 34cm)는 1652년 윤선거 등 12명의 남매가 재산을 분배한 내용을 담고 있다.
파평윤씨 윤증 가문은 호서지방(충청도) 예학을 대표하는 명문가. 윤선거, 윤증 등 당대를 대표하는 뛰어난 학자를 배출했다. 조선 중기의 대표적 성리학자인 우계(牛溪) 성혼(成渾·1535~1598)의 외손자인 윤선거는 예학에 정통했으며 문장과 글씨가 능했다.
공개된 분재기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자녀들이 돌아가면서 모시던 조상의 제사를 종손이 독점하고, 제사를 받드는 데 쓰기 위해 별도로 떼어두는 재산을 종손이 관리하도록 명시한 점이다.
분재기에는 "가산(家産)의 20분의 1을 봉사조(奉祀條ㆍ제사를 지내는데 쓰기 위해 따로 떼어둔 재산 항목)로 제출(除出.따로 떼어놓는 것)한다. 제사와 봉사조 재산을 봉사 자손(종손)이 주관한다. 제사의 남녀 간, 장차자(장자와 차자) 간 윤회(輪回·돌아가면서 제사를 모시는 것)를 금지하고 종가에서 주관한다"는 내용이 기재돼 있다.
안승준 한중연 장서각 책임연구원은 "윤선거 남매의 분재기는 관행적으로 해오던 남녀균등의 '조선식' 재산 분배를 성리학적으로 바꾼 대표적인 분재기"라면서 "조선시대 남녀가 재산분배에서 차별받게 된 원인은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어 "윤선거 남매는 집안의 가훈, 경국대전, 주자가례(朱子家禮)에 따라 재산 분배의 원칙을 정해 시행했다"면서 제사를 지내는 장자 중심으로 재산을 분배한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여성이 제사에서 제외되면서 여성에게 나눠주던 재산이 제사용 재산으로 설정됐다"면서 "노비의 경우 전체 노비의 26%, 토지의 경우 전체 논의 약 40%, 밭은 80%가 제사용 재산으로 정해졌으며 집터(가대)와 와가(기와집)는 전부 제사용 재산으로 설정했다"고 분석했다.
또 제사를 지내는 종손을 우대하되 종손에게 소유권을 준 것이 아니라 관리권을 준 것이라고 안 연구원은 설명했다.
그는 "분재기 서문에 분재의 원칙을 이렇게 상세하게 기술한 분재기는 유례가 없다"면서 "윤증 가문은 호서지방을 대표하는 예학 명문가였던 만큼 윤증 가문의 분재기는 다른 문중에서 참고하는 모델이 됐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