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캠핑은 목적 아닌 잠시 자연에 머물기 위한 방법”

[쿠키인터뷰] “캠핑은 목적 아닌 잠시 자연에 머물기 위한 방법”

기사승인 2013-02-14 16: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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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1호 아웃도어 플래너, 한형석씨

[쿠키 생활] 캠핑이 사계절 국민 여가활동으로 떠오르면서 서점에만 가도 다양한 캠핑 서적이 즐비하고 간단한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세상이다. 이렇게 다양한 캠핑 정보가 빛을 보게 된 배경에는 자신만의 캠핑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하려는 이들의 노력이 있었다.

지인들에게 소소하지만 알찬 정보를 주는 것으로 시작해 칼럼 연재와 캠핑 안내 책 발간 등으로 전문성을 인정받으면서 ‘국내 1호 아웃도어 플래너’라는 호칭까지 받고 있는 한형석(38·사진)씨를 만나 봤다.

◇캠핑에 미친 청년, 취미에서 일과 사랑을 얻다= “대학교 1학년 때였어요. 우연히 동아리 선배의 고향인 전북 무주 덕유산에 따라갔다가 캠핑을 좋아하게 됐지요. 당시는 무주리조트가 들어서기 전이어서 (무주는) 그야말로 한적한 시골이었어요. 캠핑 장비를 들고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야 했고 하필이면 비까지 내리는 바람에 너무 고단하기만 한 캠핑이었죠. ‘다시는 산에서 캠핑을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었지만, 그 다음주 바로 지리산으로 향했습니다.”

한 씨는 20년 전, 풋풋했던 대학 새내기 시절부터 캠핑과 등산에 푹 빠져 살고 있다. 많이 갈 때는 일주일에 한 번, 자주 못 갈 때가 한 달에 한 번 꼴이라니 그가 지금까지 다녀온 등산과 캠핑 횟수를 금방 헤아리기에는 벅찬 수준이다. 굳이 따져보자면 지금까지 무려 1500번이 넘는 캠핑을 다녀왔다고 한다.

1996년, 한 씨가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캠핑을 시작한지 4년 차에 접어들었을 때쯤의 일이다. 산악회 활동 중 하나로 알래스카 매킨리 원정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다. 그는 우선 캠핑을 위한 준비부터 차근차근 시작했다. 1년 동안 알래스카를 그리며 현지의 자연환경은 어떤지, 음식으로 먹을 수 있는 특산물과 챙겨야할 조리 기구는 무엇인지 등 정보 수집과 캠핑 요리 연구에 정성을 쏟았지만 97년 터진 IMF 금융위기는 그의 발을 묶어 버렸다. 그러나 아쉬움과 허탈한 기분에만 빠져 있을 그가 아니었다.

“그동안 수집한 정보와 쌓아온 노하우를 묵혀 벌릴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글로 남기자’였고 당시 출판되고 있던 아웃도어 관련 매체인 ‘월간 山’을 무작정 찾아 갔어요. 제가 특히 신경 써서 공부했던 캠핑 요리 코너를 잡지에 싣게 해달라고 요청하러 간 거죠.”

젊은이의 패기로만 비춰질 수 있는 다소 황당한 요구일 수도 있었던 그의 도전은 결국 받아 들여졌고, 한 씨는 2002년부터 2007년까지 무려 6년 동안 캠핑 요리를 연재했다. 물론 막무가내로 시작한 일이기에 부딪혀야 할 난관도 많았다.

“제 코너에 배정된 푸드 스타일리스트와 엄청 싸웠었던 기억이 나요. 조리의 정석을 지키려는 요리전문가 눈에는 과정은 생략하고 간편한 방식을 추구하는 제 요리법이 탐탁치 않았을 테니 의견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던 거죠.”

하지만 곧 반전이 생겼다. 드라마 속에서 흔히 등장하는 에피소드인 싸우면서 정드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함께 일을 시작한지 4~5개월 후부터는 직장 파트너인 동시에 이성친구가 됐고, 올해로 벌써 결혼 10년 차를 맞았다.

“우연히 짐을 날라주기 위해 지금의 아내 집을 들르게 됐는데 방 전체가 요리책으로 둘러싸여 있더라고요. 저는 이 때부터 (아내에게) 매력을 느낀 것 같아요. 제 방의 한 쪽 벽도 모두 캠핑 관련 책으로 쌓여 있거든요. 동질감을 느낀 거죠.”



◇원칙과 자연이 있는 캠핑…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파”= 월간지 요리 코너 연재를 마친 뒤 한 씨는 또 다른 시작을 준비했다. 바로 자신이 쓴 캠핑 책을 출간하는 일이었다. 2008년 6월, 희망은 현실이 됐다. 그의 첫 번째 캠핑 안내서 ‘웰컴투마이텐트’를 출간한 것이다. 이어 2011년에는 ‘대한민국 최고 캠핑여행지를 찾아라’를 발간했고, 올해는 세 번째 캠핑 관련 책을 준비 중이다.

한 씨의 책을 읽어 본 독자라면 익히 알고 있겠지만 그의 캠핑에는 언제나 자연이 있고, 확고한 원칙이 있다. 그는 산행 방식에서 흔히 일컬어지는 ‘LNT(Leave No Trace) 정신’을 특히 강조한다.

“LNT 정신은 ‘자연을 즐기되 다녀온 흔적을 남기지 말자’는 뜻을 담고 있어요. 이를테면 캠핑장 주변에 요리를 해 먹고 나온 음식 쓰레기나 각종 생활 쓰레기를 버리지 말고 머물기 전과 같은 환경으로 만들어 놓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거죠.”

더불어 그는 오랫동안 캠핑을 즐기고 싶다면 주변에 유적지가 있는 곳을 캠핑지로 선택하라고 제안한다.

“의식주의 이동이라고 할 수 있는 캠핑은 머물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자체를 목적으로 두면 처음에만 재미있지 금방 질릴 수 있어요. 캠핑을 하면서 왕릉이나 전쟁 관련 유적지 같은 곳을 둘러보면 역사적인 사건이 떠오르며 가슴 뭉클한 기분이나 감흥을 느낄 수 있지요.”

어디로든지 떠날 수 있는 자유로운 캠핑 방식과 요리 코너 연재, 캠핑 안내서 발간 등으로 표출된 한 씨의 캠핑 사랑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캠핑을 제대로 즐길 수 있도록 돕는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조심스레 밝혔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프로그램을 통해 한부모 가족들도 부담 없이 캠핑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고 싶어요. 힘쓰는 역할을 도맡아 하게 되는 아버지가 부재한 경우에는 가족 캠핑을 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잖아요.”

현재 한 씨의 직업은 LS네트웍스가 론칭한 아웃도어 멀티 브랜드숍 웍앤톡(Wolk&Talk)의 캠핑 용품을 기획하는 머천다이저(MD)다. 순수한 열정으로 시작한 캠핑 하나로 직업과 사랑, 평생 취미를 얻은 것뿐만 아니라 제대로 캠핑을 사랑하는 방법까지 실천하고 있는 그가 특별해 보이기는 하지만 낯설지는 않다. 지금까지 그려온 인생 설계도를 보면 먼저 직업을 구하고 취미를 찾는 평범한 직장인들과는 분명 차이가 있지만,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삶을 살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보통 사람들과 같은 노력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은선 기자 ujuin25@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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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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