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희의 스몰토크] 가수 설운도, 뜻 모르고 부른 노래

[전정희의 스몰토크] 가수 설운도, 뜻 모르고 부른 노래

기사승인 2013-04-09 11:23:01

가수 설운도 “분단 아픔 담은 ‘잃어버린 30년’…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

[쿠키 칼럼] 가수 설운도가 ‘잃어버린 30년’을 부른지 30년이 됐다. 이 노래는 1983년 KBS TV ‘이산가족찾기 특별 생방송’ 주제곡이기도 하다. 그해 6월 30일 ‘특별생방송-이산 가족을 찾습니다’는 1회성 프로그램이었다. 6.25 전쟁 등으로 가족과 생이별을 한 채 생사도 모르고 살아야 했던 이산가족을 위한 생방송이었던 것. 그런데 시청자의 폭발적 참여로 ‘라이브 휴먼 다큐프로그램’이 되어 이후로 138일간 계속됐다. 24시간 철야 방송도 이어졌다. 세계 언론사에 기록됐을 정도다.


설운도는 당시 25세 가수 지망생이었다. 무명이나 다름없었다. 한데 그의 매니저 안태섭은 시청률 63%에 달하는 ‘이산가족찾기 특별 생방송’을 보고 있다가 ‘이거다’ 싶어 무릎을 치며 작사가 박건호에게 곡을 의뢰했다.

‘비가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그리웠던 30년 세월/ 의지할 곳 없는 이 몸 서러워하며/ 그 얼마나 울었던가요/ 우리 형제 이제라도 다시 만나서/ 그리운 정 다시 나누는데/ 어머님 아버님 그 어디 계십니까/ 목메이게 불러 봅니다’

‘내일일까 모레일까 기다린 것이/ 눈물 맺힌 30년 세월/ 고향 잃은 이 신세 서러워하며/ 그 얼마나 울었던가요/ 못다한 정 나누는 데/ 어머님 아버님 그 어디 계십니까/ 목메이게 불러 봅니다’

1절 중 ‘의지할 곳 없는 이 몸 서러워하며…어머님 아버님 그 어디 계십니까…’나
2절의 ‘고향 잃은 신세…’가 주는 시대의 아픔이 심금을 울린다.

이처럼 담백한 노래 가사는 살아 있는 대중의 언어가 되어 그들의 슬픔을 위로한다. 언젠가 가수 조영남이 “노래라는 게 뭐야? 대중의 시(詩 )라고 봐”라고 했는데 딱 맞는 말이다. 연인과 이별을 한 이들은 클래식 선율보다 대중 노래 가사에 눈물을 줄줄 흘리는 것과 같다. 밀착된 언어의 정서성 때문이다.

설운도는 이 노래 하나로 ‘수퍼 스타’가 됐다. 히트 속도가 매우 빨라 ‘기네스북’에 기록됐다. 그는 1981년 전두환 시대 관제 축제라는 ‘국풍 81’을 통해 가수 이용이 뜬 것과 마찬가지로 벼락 스타가 됐다.

‘잃어버린 30년’이 방송을 타기 전까지만 해도 ‘이산가족찾기’ 생방송의 타이틀곡은 영화 ‘남과 북’(1965)의 주제가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였다.


1983년 ‘이산가족찾기 특별생방송’에서 25세 나이에 ‘뜻 모를’ 노래 부른 사연

당시 20대 중반 부산 태생 청년 설운도. ‘58년 개띠’, 오늘날 ‘베이비 부머’세대의 대표 생년인 그는 전쟁과 이산의 아픔도 잘 모른 채 오직 가수의 꿈을 향해 이 노래를 불렀다.

그가 9일 오전 KBS 1TV ‘아침마당’에 출연, ‘잃어버린 30년’을 부른지 30년이 됐다는 얘기를 했다. 게스트 김혜영(MC)이 “뜻은 알고 부르신 거예요”라며 약관이었던 그를 향해 우스개 소리를 했다. 설운도가 “당시 실향민 등이 제 노래를 들으며 너무나 울어 가슴이 뭉클했다”며 “세월이 유수와 같다”고 회상했다. 그리고 이어진 한 장의 사진. 가족을 애타게 찾는 당시 방송 화면이다.

1953년 휴전협정. 그 후 30년이 지난 1983년은 전쟁 직후 비로소 끼니 굶지 않게 된 시기였다. 전쟁으로 찢어진 가족을 찾을 힘이 그나마 있었던 것. 그래서 이산가족은 설운도의 노래 가사처럼 가족이 그리웠고 이미 돌아가신 어머니, 아버지를 목 메이게 불러보는 날들이었다.

한데, 또 30년이 흘렀다. 남한 내 이산가족은 못 찾은 이들이 거의 없다. 그러나 남·북 이산가족은 남북간 생색내기 가족상봉 행사에 속병이 났다. 수십년 간 지지부진이고, 지금은 말조차 못 꺼낼 정도로 경색됐다. 결국, 가족도 찾지 못한 많은 이들은 한을 안고 세상을 등지고 있다. ‘어머님 아버님 그 어디 계십니까’는 허공에 뿌려진 그들의 시가 되어 가고 있다. 이런 비극을 가진 민족이 지구촌에 몇이나 될까?


그 설운도가 50대 중반이 되어 오는 5월 ‘잃어버린 30년’ 30주년 기념 효공연을 갖는다고 한다. 30년 전과 달리 이산가족의 아픔을 절절히 느낄 나이다. 노래는 남고, 사람들은 그리운 이들을 부르며 죽는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
전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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